[가고파] 한자(漢字)의 쓸모- 강희정(편집위원)

‘심심산골(深深山골)’, ‘명약(名藥)’…. 올해 중학생이 된 둘째 아이의 첫 국어시험 문제, 단어 뜻을 적는 주관식이다. 평소 독서와 거리가 멀고, 한자는 배워본 적 없는 딸아이의 답은 황당 그 자체였다. 이런저런 변명을 쏟아내는 동생을 향해 “어이 없다”며 혀를 차는 중3 큰아이가 그나마 위안이 된달까. 한편으론 13세 소녀가 쉽게 접하는 단어가 아니니 달달 외우지 않는 이상 한자의 의미도 모른 채 정답을 맞히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자는 기원전 2세기인 고조선 후기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며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한자 이름과 성을 사용하고 있고, 지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에서 활용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제어 51만여 개 중 한자어의 비율은 58.5%다. 고유어는 25.5%로 한자어의 절반 이하다. ‘물론’, ‘지금’ 처럼 ‘여전’히 자주 쓰는 순우리말 같은 한자어도 많다.
▼최근 ‘시발점’은 욕, ‘두발 자유화’의 두발을 두 개의 발로, ‘족보’를 족발보쌈세트로 이해한 ‘요즘 젊은 것들’의 문해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혹자는 한자 교육의 부재가 문해력 저하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대 간 어휘력 차이는 과거부터 있어 왔다. 현재 4050세대도 한글전용에 익숙해져 신문도 못 읽는다고 욕먹은 세대다. 결국 어휘력 차이는 사회 변화, 문화 차이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셈이다.
▼한자는 한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언어학적 도구다. 또한 한글이 어휘를 더욱 확장해 발전할 수 있게 한다. 책이나 신문 등 텍스트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짧고 강렬한 이미지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자’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 쓸모 있게 만들지는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 젊은 세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책 읽는 모습이라도 보여 주자. 아이들은 말로 배우지 않고 행동으로 보고 배운다.
강희정(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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