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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문학작품이 주는 위안- 백남오(문학평론가)

기사입력 : 2024-05-16 19:43:16

우리는 살면서 가끔은 이웃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친구가, 동료가, 이웃이 나를 미워하며 사실과 다른 험담을 하고 다닐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대개가 그의 입장은 조금도 이해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를 무작정 원수로, 적으로 생각하며 지금까지 쌓아온 의리를 무너뜨리고 만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이 역시도 삶의 진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면 착각일까. 가령 전쟁터에서 싸우는 적의 경우, 나는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의식이다. 또한 적은 나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 자, 이때 서로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함은 각자의 삶에 주어진 사명감이다. 누구나 삶에 진정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숭고한 일이다.

이런 난해한 문제의 본질을 풀어주는 문학작품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와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이면서 외치는 대사는 이러하다. “아, 나의 형제여, 나는 이제껏 너보다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귀한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 자, 나를 죽여도 좋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이제 나는 상관없다.”

승부 자체가 아니라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여 싸우는 것이 중요함을 이 소설은 강조한다. 어부는 어부로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소명을 다한 것이고, 물고기는 잡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노인은 스스로 죽음의 위기에 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제라고 고백하며 고귀한 동지애를 느낀다. 물고기와 자신이 같은 운명의 동아줄에 매여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소설은 삶에서 진정성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주는 인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종말을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이렇게도 많은 감동과 치유를 주고 있다. 그 울림으로 인하여 새로운 가치관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절망의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기도 한다. 삶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명작 속에 갈등을 풀 열쇠와 유토피아가 있음이다. 그것이 또한 문학작품이 주는 위안과 힘임을 믿는다.

백남오(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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