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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22) 최영욱 시인과 정대병 서예가

부부송을 닮은 두 남자

말없이 통하는 詩와 書

기사입력 : 2014-11-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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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욱(왼쪽) 시인과 정대병 서예가가 하동군 평사리 한옥체험관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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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평사리에는 유명한 부부송이 있다.

그 너른 들판에 외로이 두 그루 소나무가 서 있다. 누가 심었는지도 알 수 없다. 부부처럼 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소나무를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 토지마을인 평사리 최참판댁이다.

매일 최참판댁과 평사리 이 소나무를 마주하는 사람이 있으니 평사리문학관 관장 최영욱(57) 시인이다. 그에게 이 부부송 같은 인연이 닿았다.

30년 넘게 지내오며 부부같이 티격대는 친구, 정대병(63) 서예가가 있기 때문이다.

11월 늦가을이 번져가는 때 평사리 한옥체험관 누마루에서 둘을 만났다.

경상도 남자 둘은 같이 있어도 서로를 잘 마주하지도 않는다. 둘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매일 바라보는 지리산 골짜기가 얼굴에 패어 있는 사람, 산의 깊고 웅숭한 이야기를 얹고 다니는 사람은 최영욱 관장이다. 산장지기 같다고 할지 모른다. 사실 산장지기가 맞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머물 때 찾는 평사리 한옥체험관을 운영한다. 산장지기는 14년간 평사리문학관에서 일하며 이곳을 지켜오고 있다.

정대병 서예가의 얼굴은 섬진강의 잔잔한 수면을 닮았다. 고요한 섬진강, 평안한 언굴이다. 그의 눈가 주름이 억새처럼 자잘하게 빛난다. 강물은 지리산 골짜기를 건너 지르지 않는다. 골짜기를 끼고 함께 흐른다.

조용하고 호젓한 누마루가 시끌하다.

“나는 술 먹고, 이 친구는 술 안마시니까 나보고 술 마신다고 뭐라하고. 그런데도 또 술주정하면 잘 받아줘. 그래서 계속 보는거지 뭐.”

술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실 만큼 좋아하는 최 시인과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정 서예가. 이렇게 다른 둘은 하동이라는 품안에 있어 만났다. 둘 다 예술계에 있다 보니 이름은 들어보고 인사만 하고 지내다 사이가 가까워진 계기가 있다. 정 서예가가 최 시인의 시를 붓으로 써내려 갔기 때문이다.

“저 양반이 내 시를 글씨로 써서 인사동에서 전시하고 팔았는데 좀 깎아달라고 하니까 ‘예술의 값을 깎을 수 없다’고 했다는 거예요.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자존심, 작품에 대한 집착이 마음에 들었지요. 이해도 안되는 내 시를 써주니 고맙기도 하고.”

이후 최 시인이 하는 토지문학제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휘호대회를 정대병 서예가가 맡게 되면서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정대병 서예가는 나이가 최 시인보다 많지만 말이 통해야 친구 아니냐고 되묻는다. 자주 보지도 않지만 끊어지지 않는 끈이 있다고 했다.

“원래 친구가 많지 않아요. 내성적이기도 해서, 관심분야나 뜻이 같은 사람들이나 만나지. 서예가가 물론 편하지만 최 시인은 분야가 달라도 굉장히 통하는 부분이 있죠. 말을 안해도 말이에요.” 최 시인이 받아친다. “굳이 할 말이 있나?”


정대병 선생은 할 말이 있다. 최 시인의 시를 쓴 이유가 있다고 했다.

“최 선생 시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납니다.” 정 서예가가 최 시인의 시를 놓고 말했다.

“막걸리는 굉장히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술이잖아요. 병 모양새가 예쁜 것도 아니고. 시큼한 냄새가 그대로 맛이 되는. 붓으로 써보면 그런 게 다가옵니다. 최 선생 시에서 느끼는 매력이지요. 옆에서 지켜봐왔지만 낭떠러지에도 서 보고, 아픔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이런 시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 강의 얼굴을/접었다 폈다 한다/강에 담긴 산도 달도/섰다 흔들렸다 한다//바람 탓이다/상처 탓이다//강의 물결은 바람으로 일고/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 -최영욱, 주름

최 시인의 시 ‘주름’을 쓴 부채를 펴 내보이면서 정 서예가가 말을 잇는다.

“우리 관장님 막걸리 안 드시는데, 싫어하시는 것 같던데요?” 평사리문학관에 함께 있는 하아무 소설가가 옆에서 우스갯소리로 거든다.

“안 마시니까 나는 거죠, 마시면 입에서나 나겠지만, 삶 자체에서 나진 않지요, 하하.”

칭찬에 머쓱한 최 시인은 대화를 하다가도 방을 쓱 나갔다가 들어왔다가를 반복한다. 그러고는 한마디 툭 던진다.

“좋은 게 없어서 썼겠지 뭐. 솔직히 여기 있으면서는 시를 거의 못 썼어요. 그립고 사무치는 게 없다고 해야 맞을까. 이제 떠나려고요, 하동을 떠나야 내 작품이 쓰여질 것 같거든.”

완석(頑石) 단단한 돌을 뜻하는 이 말은 정 서예가의 호다.

“돌같이 멍청하면서, 단단하고 착하게 살고, 작품을 만들어 나가라는 뜻이에요. 돌은 계산하지 않으니까요.”

최 시인은 아까는 정 서예가가 술도 못한다고, 읽어보지도 못할 글씨를 써놓는다고 이르더니, 그 사이 말을 바꾼다.

“정 선생은 술을 안 하지. 정적이고, 스스로를 자제하면서 글씨를 붓으로 써내려 가야 하는데 손 떨면 안 되니까. 늘 자기를 정돈하고 정리하는 작업이어서 더 그래야 할 거예요. 그 인내가 대단하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끌리는 것 같아요.”

전서로 써내려간 정 서예가의 작품사진을 꺼내놓는다. 전서로 일일이 적은 금강경이다.

“알아볼 수 없게 써 놓고는 읽으라고 한다, 맞지요, 하하. 근데 이것 좀 보세요, 예술가 집념이 다 드러나죠.”

5400여자로 이뤄진 금강경을 전서로 쓰기 위해서는 금강경의 각 한자마다 해당하는 전서를 찾아내야 한다. 지금은 예전보다 글자 수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약속’인 글자를 지어낼 수 없으니, 일일이 찾는 작업을 거친다. 이 작업을 ‘집자’라고 한다. 집자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린다.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작업이지요. 끈기 없이는 못하는 일입니다. 힘과 기품이 느껴져야 하니까요.”


부부송같이, 또 떨어져 서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두 예술가는 상대의 예술세계를 존중하고 지켜주려 하기 때문이다.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예술인들이 주목받기 어려워요, 참. 정 선생 같은 분이 하동에 있는 게 안타깝지. 지역예술인들의 작품들이 더 널리 알려져서 활발한 창작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말을 아끼던 최 시인이 유난히 힘줘 이야기한다. 그에게 진득이 앉아 있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건네던 정 서예가도 그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노란 들판에 솟은 두 그루의 푸른 소나무가 평사리 누마루에도 있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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