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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14) 김혜연 시인

엉터리 그림일지라도 어린시절 마산 골목길

추억의 퍼즐 조각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기사입력 : 2014-12-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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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시인이 초등학교 시절엔 외할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사춘기 때는 학교를 빼먹고 돌아다녔던 오동동 골목길 벽에 기대 미소를 짓고 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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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시인이 졸업한 마산 상남초등학교에서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다.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기억의 무게가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만큼의 기억을 마음이란 창고에다 옮겨놓았을까. 행여 달아날까 조바심하며 완벽한 이기심으로 만들어놓은 시간의 퍼즐조각 몇 개가 나를 이끌어오고 있듯, 어쩌면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만 욕심껏 꽝꽝 못질한 채 가두어두고 있지는 않을까.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아무 하는 일 없이 재산만 탕진하다가 늙어버렸다는 우리 외할아버지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와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잔소리 없이 하얀 모시옷 빨고 두드리고 다려서 깨끗하게 입히시는 외할머니 덕분에 할아버지가 외출하시면 집 앞 골목이 다 환해졌다.

새로운 정화작업에 어느새 몽땅 헐려버린 오동동 아케이드마저 생기기 훨씬 오래전,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개천 따라 양쪽 길가에 술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껏 멋을 낸 할아버지께서 정해 놓은 단골집 없이 오늘 내일 모두 다르게 골고루 술집을 섭렵하는 동안, 저녁 진지 드시게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심부름꾼은 날마다 어린 내 차지였다. 손님 오나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한복 입은 언니들이 할아버지 안 오셨다 암호처럼 알려주는 집을 지나치면, 마침 할아버지가 계신 집에서 손녀 왔어요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친절하게 불러내주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덕분에 결석 없이 술집으로 심부름은 갔지만 어찌 싫었다는 기억보다, 화장 곱게 한 언니들이 살고 있는 그곳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웠던 기억만 맴돈다. 취기가 오른 할아버지께서 내 손 꼭 잡고 흥얼거리시던 변함없는 주제곡 또한 이제는 까마득해졌으나, 함께 걸을 때 느끼던 바람 냄새와 나뭇가지의 움직임, 하천 맑은 물소리는 잘 포장해두었다가 방금 꺼낸 선물처럼 아직도 선명하다.

온 몸으로 깨금발까지 통통거리며 할아버지를 찾아 뛰어가던 기분 좋은 유년의 추억을 건너면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또 다른 기억의 한쪽 끝에 가 닿는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 분 다 외동딸 외동아들이시고 역시나 아들과 딸을 한 분씩만 두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하셨던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아들 직장 따라 이사 가면서 손녀인 나를 데려가 키우셨다. 이유인즉 당신 딸이 내리 딸 둘만 낳아 혹여 큰집에 눈치라도 보일까였다. 여하튼 그 무한한 애정 덕분에 한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이때가 집으로 돌아온 시기다.

부산에서 다니던 학교와 달리 마산의 초등학교는 실망스러웠다. 운동장은 늘 질퍽거렸고 아이들은 촌스러워 가까이 하기 싫었다. 풍족한 외갓집 덕분에 항상 반짝거리는 구두를 맞춰 신고 끈 달린 가방을 메고, 지우개연필과 필통을 사용했던 허영심 가득한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더구나 비 온 뒷날에는 세숫대야나 소쿠리 등의 도구를 들고 학교로 오게 해 아이들을 전부 하천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지금이라면 학부모들이 당장 난리가 날 일이지만 하천에서 주워온 돌들로 운동장 곳곳에 패어 있는 물웅덩이를 메우게 했다. 그때마다 학교 못 가겠다며 울던 내가 예쁜 돌만 골라 볕 잘 드는 운동장 한편에 모아두는 일로 스스로 위로 삼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웅덩이를 메우는 것보다 내 물방울무늬 치마로, 비 맞아 반짝이는 보석을 옮겨다 몰래 무덤처럼 쌓아둔다는 것에 더 재미를 느낀 것이다. 아무짝에 쓸모없던 반항도 학교운동장 공사가 시작되면서 조용히 끝나버렸지만 문득문득 행복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여울지는 건 참 신기하다.

전학 온 학교에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숙제 끝내자마자 구마산역으로 달려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취미에 빠졌다. 연기를 내뿜고 큰 기적소리 기차가 들어설 때까지, 마치 친구를 기다리거나 혹은 먼 곳으로 여행 가는 기분으로 개찰구 입구 낡은 의자에 퍼질고 앉아 있었다. 가끔 씹다 버린 껌이 붙어 있거나 약 광고가 조금씩 지워져 있기도 하던 긴 나무의자는 참 딱딱했다. 한참을 놀다 우리 동네 제일 높은 목욕탕 굴뚝과 교회 십자가 그림자가 차츰 낮아지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어섰다. 엄마의 잔소리가 계속 시작되면서 오랫동안 집중했던 취미생활도 반항 없이 시시하게 접어야 했다.

키가 자라고 마음도 자라면서 당황하고 믿기 힘든 엉뚱한 사춘기와 또다시 마주한다. 수업을 받다가 무작정 학교 밖으로 나가 전혀 낯선 길을 걷고 또 걷다 힘들면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몇 번이나 학교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경우마저 생겼고 아무 이유 없이 딴 곳에 정신 파는 딸 대신 엄마는 자주 교무실에 불려 가야만 했다. 서원곡이나 산복도로 갈비 골목 교방동 철길 창동 등등 거의 안 다닌 마산의 골목이 없을 정도로 혼자만 떠돌던 낯선 골목 기행도 잠시 시들하고 지쳐 갈 때야 그렇게 거짓말처럼 빛나는 내 사춘기도 완벽하게 끝났다. 생각해보면 철없던 이 모든 일들이 거실에서 발톱을 깎거나 빈둥거리며 차 마시는, 아주 평범하고 게으른 나를 뻔뻔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비밀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추억하다>>


당신 부탁해요 이곳에 구마산 역 광장이 있었어 제비라는 예쁜 산도 근처에 있었는데 따위 식상한 추억은 늘어놓지 마세요 이야기에 묻혀 전학 온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을 꺼내놓아야 하고 이름 낯선 월남다리 개천 따라 온천목욕탕 입구에 도착할 때쯤 뿔뿔이 흩어진 친구이름과 저녁 늦게야 오색불이 켜지는 홍콩빠 예쁜 언니들 모습도 기어이 상기해야 해요 동네 유일했던 구둣가게 과일가게 지나 어릴 적 우리 집은 찾을 수 있나 어렵게 가늠하는 동안 그래요 대합실 나무의자에 눌어붙은 껌처럼 덕지덕지 오래 묵은 기억의 배경 속을 긴 소설처럼 읽고 다시 읽는 수고로움에 빠져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당신 몇십 년 거슬러가 긴 머리에 하얀 얼굴 대신 주름진 저를 만나게 해주신다면 따따부따 옛 시간 기어이 되돌려주신다면 못 이기는 척 은근슬쩍 함께 자리 할지도 또 모르지만 말이지요



시를 쓸 때 가슴이 젖어 왔다. 잘 쓰고 못 쓰고보다 사진첩을 펼쳐 보듯 성큼 한걸음에 달려와 준 먼 기억이 반갑다. 포클레인으로 흙을 갈아엎고 건물을 밀어내는 동안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있어 준 추억의 이름도 고맙다. 빠진 이빨처럼 듬성듬성 놓여 있던 징검다리도 마당 넓었던 외갓집도 감쪽같이 지워져버린 낯선 오늘, 언제 끝나 버릴지 모르는 변덕스런 시 쓰기보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내 시간의 퍼즐조각이 여전히 엉터리 그림을 마음대로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골목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내가 먼 훗날 어깨 툭 치며 어이 하나도 안 변했네, 또 다른 주름진 얼굴의 나에게 익숙하게 보낼 감동의 인사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김혜연 약력>

△1957년 경남 마산 출생 △1993년 시와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음각을 엿보다’ ‘잠들지 않는 강’ 등 △경남문인협회·창원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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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한국사진학회 이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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