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고]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 근본적으로 검토하자- 고용석(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기사입력 : 2016-12-22 07:00:00
메인이미지

지난 20일 현재까지 국내 농가 336곳에서 무려 1911만 마리의 닭, 오리 등이 살처분돼 곧 2000만 마리에 이를 전망이다. 전국으로 퍼진 H5N6형과 함께 가금류 1400만 마리가 살처분된 2014년의 H5N8형도 확인돼 사상 처음으로 두 가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 매번 반복되는 이러한 비극과 그 파장을 이제 근본적으로 검토해 봐야 되지 않을까.

1920년대에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타자와 맺는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의 본질적 차이에 관한 개념을 발표한다. ‘나와 그것’ 관계는 ‘나와 너’와 달리 상대를 물건으로 여기는 관계이다. 상대를 비인격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는 소비 착취하는 대상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 황폐해진 생태계 그리고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이 관계의 심층부에 음식 선택이 자리한다.

밥상에 오르기 위해 연간 700억 마리의 동물이 무자비하게 도살당한다. 어류의 50%와 세계 농지의 80%, 물 소비의 70%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낭비된다. 또한 세계 식량의 40%가 가축사료로 투입되면서 연간 10억명은 배고파 죽어가는 반면, 20억명은 배불러 만성질환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치료용 신약 개발을 위해 연간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대상으로 희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구조의 왜곡과 인수공통전염병의 반복은 물론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계 파괴를 초래한다. 이는 미래의 아이들과 생명들에게 무의식적 폭력과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폭력, 아동학대, 자살, 약물중독, 비만, 스트레스 등등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들도 성찰해보면 이 죽음과 고통의 쳇바퀴 속에서 우리가 동물과 가금류들에 가한 행위들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갓 태어난 새끼들을 떼어놓고 오로지 이익을 좇아 고기를 빨리 살찌우고 강제임신시키는 데 온갖 약물을 투여하는 등 공장식 사육환경과 도살과정은 현대판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다.

이들에게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 분노 등을 야기하며 고기를 먹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모든 것도 먹는 셈이다.

옛사람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곤 했다. 하늘의 새가 한 알, 땅의 벌레가 한 알, 사람이 한 알을 먹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합혜와 까치밥, 고수레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상대의 범위를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무생물까지 자연스레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 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것이다. 오늘날 파국으로 치닫는 지속가능성 위기도 결국 인간의 위기이며 스스로 그러하는 자연과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인 셈이다. 비건(완전채식)은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생명의 선순환 즉 ‘나와 너’ 관계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