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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웨딩다이어리 (4) 택일- 더없이 좋은날

기사입력 : 2017-07-10 16:16:40


서로가 결혼을 마음 먹고서는 줄곧 '토요일 예식'을 생각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근래 내 주변 지인들은 예식날이 대부분 토요일이었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다 보니 하객들이 예식시간이 언제든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보통 결혼휴가가 5일(월·화·수·목·금)이다 보니 토요일에 결혼식을 하면 여행에 하루를 더 할애할 수 있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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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개인적으로도 토요일에 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경남신문사는 크게 편집국·사업국·광고국·전략기획실·독자서비스국·총무국으로 나뉘고, 나는 편집국 소속 기자다.

편집국은 부서에 따라 '월·화·수·목·금' 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특성상(월요일 신문 제작을 위해) 기자, 부장, 국장 등 직원 대다수가 '일·월·화·수·목' 근무다. 즉 토요일만이 직원 모두가 쉬는 날이 된다는 소리다.(통상 근무일이 정해져 있더라도 사건사고가 터지면 토요일에 근무하기도 한다.)

사실 결혼이야 구청에서 서류에 도장만 찍어도 되지만, 결혼식이라는 건 '우리 결혼합니다. 와서 축하해주세요'를 내포하지 않나. 식을 안 하면 모를까 이왕 하는거 가족, 친구는 물론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친한 직장동료들과 좋은 날을 기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약 2년 전 일요일에 결혼했던 한 선배의 결혼식에 많은 기자들은 근무시간인 탓에 참석하지 못했다. 기존 석간이던 경남신문이 조간 전환이 되던 2015년 초였다. 결혼식 날짜야 당연히 한참 전에 잡았으니 신문사의 발행체제 변화까지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에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그래서 나는 11월 어느 일요일에 결혼한다. 창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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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토요일 예식을 주창하더니 왜 일요일이냐고? 결혼은 '둘'이 아닌 '가족'의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님과 우리는 서로 하나씩 양보했다.

부모님들께서는 일요일 예식을 원하셨고, 우리는 양가 부모님이 계신 지역이 아닌 우리의 터전이 될 곳이자 직장이 있는 창원에서의 예식을 바랐다. (사실 부모님께서 창원에서 결혼한다는 우리를 이해해주신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통은 곰대리든 나든 한쪽의 본가가 있는 곳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고집을 버리지 못했다. 때문에 양가 부모님과 지역의 어른들은 예기치 못한 이동을 하시게 됐다.) 때는 봄이었고 우리는 가을쯤이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상견례 한참 전부터 엄마를 들들 볶았다. 엄마가 "결혼식 날짜는 철학관에 가서 좋은 날을 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한 탓이었다. (곰대리와 나는 우리가 하고 싶은 날 중 예식장이 남아있는 날에 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뜻을 굽힐 수는 없는 것을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던 때문이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 좋은 날을 받고 싶었다. 줄곧 '나중에~'라며 모르는 척하던 엄마는 딸내미 등쌀에 못 이겼던지 틈나는 대로 철학관을 수소문한 듯했다. 나는 '상견례 마치고 철학관에 가야한다'고 엄마를 끊임 없이 세뇌시켰고, 엄마는 결국 딸한테 졌다.(지금 생각하니 하루 빨리 결혼 날짜를 잡아달라고 조르던 딸에게 엄마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상견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쉬겠다는 아빠를 두고 철학관으로 향했다. 곰대리와 나의 생년월일시, 양가 부모님의 결혼월이 적힌 종이를 들고서.

"10~12월 중 일요일이면 좋겠다"는 말에 철학관 선생님(?)은 이리저리 요리조리 계산하신 끝에 고개를 들었다.(뭐라 지칭해야 할지 몰라서요...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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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고 있던 날을 말하며 좋은 날이라 했다. "그럼 그날 하면 되겠다"는 내 말에 그는 사람 말 끝까지 들으라면서 말을 이었다.

"그날은 보통 좋은 날이고. 이날이 정말 좋은 날이네. 신랑의 천의일이고 신부는 복덕일이야. 더없이 좋은 날이지. 이날 결혼해."
(좋은 말을 해주셨는데 잘 몰라서 사전적 의미를 첨부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천의일'이란 일진(日辰)과 나이를 팔괘의 수로 나누어 그날의 운수를 알아보는 생기법으로 본 길한 날의 하나이고, '복덕일'이란 생년월일의 간지(干支)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일의 하나.)

그날에 대한 엄마와 나의 동의가 떨어지자 선생님은 날짜와 이유를 담는 연길장(涓吉狀)을 한자로 써내려갔다. 요즘은 어른들 성향에 따라 전화로 날을 전하기도 하지만 전통을 중시한다면 연길장을 봉해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녀는 연길장을 받고도 한참을 집에 못 갔다. 선생님의 말이 이어진 탓이었다.

"결혼을 함에 있어서 신부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 얘기할테니 받아 적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는 예단은 보통 얼마를 넣어 어떻게 전달한다, 함은 또 어떻게 한다, 결혼식 전날 시댁에 전달하는 상음식이라는 게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서야 우리는 집에 갈 수 있었다.(모든 얘기가 끝나고 "그런 것들 다 생략하기로 했어요"라는 엄마 말에 선생님은 적잖이 민망해 하셨다. 그래도 자기가 아는 지식을 다 말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설명해주신 선생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는 2017년 가을에 꿈에 그리던 결혼을 하게 됐다. 근데...프로포즈는!?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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