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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우리가 남이가?- 김한규(시인)

기사입력 : 2017-09-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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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 않는다보다는 못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해봤지만 정규직은 아니었다. 상대적 차별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인지 비정규직 동료들은 술을 좀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회식도 많이 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우고, 그렇지 않는 곳도 많을 것이다.

물론 직장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회식’의 형식이나 내용도 여러 가지다. 어떤 작업 단계를 맡아서 짧은 기간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회식이 만남이나 이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정규직도 불안하다. 그러나 특히 나이가 좀 많은 비정규직 남자들의 경우 불안이 정서를 지배한다. 나라경제의 상황이 갈수록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식을 하면 그 불안을 나누고,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가 되기 십상이다. 대체로 남자들에게 그 기대의 8할은 술이다. 물론 일을 마치고 날마다 마시는 이도 있지만 모이는 것은 또 다른 분위기가 있으니까. 작업과정의 어려움도, 팀원들과의 소통도 같이 마시면서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대 섞인 회식이 시작되고 무르익는다.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다른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의기가 투합 되기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술에 점점 관대해진다. 예상보다 빈병이 늘어나도 오늘은 그만큼 분위기가 좋다고 여긴다.

이처럼 이른바 ‘회식문화’는 생활의 방식 속에 깊숙이 안착되었다. 다만 아직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꺼내기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변화의 추세도 있는 것 같지만, 술이 매개의 중심이 되는 회식문화가 사실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현진건이 일찍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그만큼 술이 남성주의적 향락과 놀이 문화에 크게 공헌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공동체의 성원이 되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술을 매개로 한 모임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좋은 작용도 있다. 그러나 통념에만 기대면 버릇이 되는 부작용도 있다. 어떤 이는 회식을 핑계 삼아 꼭 필요하지 않은 술자리를 즐기기도 한다. 회식 자리가 무르익으면 ‘우리가 남이가’식의, 자본주의의 체제 밖이라는 낭만성을 뒤섞기도 한다. 그러나 그 증여의 이미지는 사실 환상일 경우가 크다. 뒷날 숙취를 달래며 흐린 기억을 되살릴 때 현실은 또 냉혹하게 앞에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렇잖아도 힘든 노동 때문에 몸이 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술 때문에 더해지는 경우도 많다. 모여 앉아서 술을 권하고 마시며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남이다. 결코 어떤 타인도 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힘든 노동을 서로 위로하는 자리는 좋다. 다만 결과가 어떤 순수한 의도를 배신하게 될 때, 그것이 반복되면 버릇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버릇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주 만나라’는 것이다. 감정의 소비, 돈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남이다. 다만 정말 힘이 되는 연대가 중요하다.

김한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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