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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아키히토 일본 천황의 국빈 방한을 기대한다 -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기사입력 : 2017-10-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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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天皇)이 일본국 천황으로는 처음으로 고마(高麗) 신사를 참배했다. 고마 신사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로 일본에 망명한 약광(若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아키히토 천황은 1990년 11월에 즉위한 일본국 제125대 천황이다. 일본의 구 헌법에서는 천황이 국가의 통치권자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태평양전쟁 패전 후 신헌법에서는 국정에 관한 권능은 보유하지 않고 국민통합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에서 천황이라는 문자가 문헌에 정식으로 나타난 것은 7세기경이다. 일본은 7~8세기에 이르러 국가의 형태가 갖춰졌는데 이 시기에 역사의 중요성도 인식하기 시작해 712년에 고사기(古事記), 720년에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역사서를 완성한다. 초대 천황인 진무(神武) 천황부터 현 천황까지 125대가 연속해 만세일계 (萬世一系)를 이뤄 단 한 번의 역성혁명 없이 단일혈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초기 천황들은 가공의 인물들이긴 하지만 일본의 천황가는 수천년에 걸쳐 일본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아키히토 현 일본국 천황은 2001년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제50대 칸무(桓武) 천황이 793년에 편찬한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칸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기록돼 있으며, 자신도 백제 무령왕의 후손임을 일본국 천황으로는 처음으로 밝혔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증거 자료를 통해 이미 입증한 사실이긴 하지만 천황 본인의 입으로 이를 직접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아키히토 천황이 백제 후손이라면 만세일계 혈통의 일본 천황가는 모두 백제계로 고대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다양한 선진 문물을 한반도에서 전수받아 국가를 발전시켜 왔다. 3세기 말에서 7세기 중엽에 걸쳐 일본 영토의 대부분을 지배한 최초의 통일정권인 야마토(大和) 정권도 나라지역을 중심으로 백제계 등 도래인이 주도했다. ‘나라’라는 지명도 국가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황이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던 때는 우리와 관계가 좋았다는 점이다. 중세와 근세기에 이르러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빈번하였으나 이는 천황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잃은 상황에서 일부 정치 군부 세력이 주도한 것이다. 현재도 유사한 상황이다.

아키히토 천황은 평소에 선조 나라인 한국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표명해 왔으며, 방한을 희망해 왔다. 일본국 천황의 상징성과 중요성을 감안할 때 현 아키히토 천황이 국빈으로 방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한일 양국 관계의 매듭을 풀고 미래 지향적이고 우호적인 교류 협력 관계를 재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자신들이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받들고 있는 천황가가 백제계로 고대 한국인의 후손임을 인식하게 돼 한일 양 국민 간의 친밀도가 높아질 것이다. 또 일부 우익세력의 혐한적인 행태를 견제할 수 있고,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키히토 천황은 건강 등의 사유를 들어 조만간에 황위를 황태자에게 물려주고 퇴위한다고 한다. 가능하면 재위 중에 방한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퇴위한 이후에라도 방한해 양국간의 교류 협력 증진에 기여해 주면 좋겠다. 방한 시에는 일본 천황의 직계 선조인 백제 무령왕릉에서 정식으로 제사도 지내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방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무엇보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 같은 한일 양국 관계의 매듭을 풀 열쇠가 여기에 있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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