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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191)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⑦

“먹고살 만치 법니다”

기사입력 : 2017-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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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숙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유미란이 쓴 내용은 사채업자 윤사월의 일생이었다. 그녀는 70년대 잣 도매상으로 명성을 떨쳤고 돈이 많다고 금반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70년대까지는 일수로 돈을 벌고 80년대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 90년대는 기업에 사채를 빌려줘 명동 금반지로 명성을 떨쳤다. 현금 동원 능력이 하루에 수천억원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서경숙은 커피를 마시고 밖을 내다보았다. 사채로 돈을 번 사람도 많고 사채로 망한 사람도 많았다.

서경숙의 먼 친척 여동생이 있는데 30대 초반이었다. 집안이 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점원으로 일을 했다. 몇 년 동안 일을 하다가 역시 점원으로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동대문 의류상가의 특성상 밤에만 일을 했다.

서경숙이 그들 부부에게 잘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항상 따랐다.

그들은 부부가 모두 점원이었기 때문에 큰돈을 벌지 못했다. 이때 남자가 일수 돈과 급전 등 고리대금을 하는 무허가 업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옷가게 점원으로 평생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2, 3년 동안 업자 밑에서 일을 하던 그는 3000만원의 자금으로 독립했다.

동대문의 의류상가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200~300만원에서 5000만원의 급전을 빌려주고 일수로 회수했다. 사람들은 일수가 고리대금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급전이 필요하여 돈을 빌렸다.

그곳에는 일수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자율도 정해져 있었다. 3000만원이 일 년 만에 갑절로 불어났다. 그는 은행에서 융자까지 받아 고액의 일수놀이를 했다. 그의 일수놀이는 호황을 누렸다. 그는 의류상가의 일개 점원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수십억대의 부자가 되었다. 아내는 의류가게를 그만두고 살림을 했다.

“얘, 너 한 달에 얼마 버니?”

서경숙이 한 번은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서경숙은 그를 남동생처럼 생각했다.

“먹고살 만치 법니다.”

그는 자신의 수입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사채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500만원 버니?”

“에이 그 정도 벌려면 이 짓 안 합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서경숙은 그가 한 달에 수천만원씩 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했는데 화해를 하기 위해 아내에게 벤츠를 사주었다.

‘지들이 무슨 재벌이라고….’

서경숙은 정상적으로 돈을 벌지 않는 그들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채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서경숙의 이웃에 사는 남자인데 대기업에 다니다가 중간에 명예퇴직을 하고 사채업을 시작했다. 사무실도 내고 광고도 했다. 직원까지 채용하여 대출을 해주었는데 자금이 좀처럼 회수되지 않았다.

이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전화로 이자 납입을 독촉하면 오히려 떼어먹을까 봐 그러느냐고 악을 쓰고, 오죽하면 이자를 못 내겠느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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