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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192)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⑧

‘이 여자가 남자 복은 없군’

기사입력 : 2017-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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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악을 쓰는 사람에게 원금과 이자를 독촉할 수 없었다. 2억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하여 사채업을 하다가 몇 년 만에 망했다.

‘사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하는 거야.’

서경숙은 사채업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채업자들은 비정했다.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는다고 집에서 내쫓고 가전제품을 압수했다. 최근에는 장기적출을 하는 불법 사채업자들도 있다고 했다.

한 번은 고미술품이 창고에 가득하다고 하여 가본 일이 있었다. 창고의 주인은 남편의 지인으로 조직폭력배 출신이라고 했다. 그의 창고에는 병풍, 도자기, 각종 그림 등이 가득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으나 사채업자를 대신해 돈을 받으러 갔다가 받지 못하자 빼앗아 온 미술품이었다. 고미술 가치가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부분 100만원 안팎에서 10만~20만원에 살 수 있는 조잡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창고에 가득할 정도로 고미술품이 있다는 것은 그만치 악독한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서경숙은 사채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채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다. 서경숙은 다시 윤사월의 일대기를 읽기 시작했다.

윤사월은 황민우의 자취방에서 쫓겨났다. 그녀는 고향 충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구로동 전자회사에 취직하여 하루 종일 납땜을 했다. 윤사월은 공장에서 남자를 만나 동거했다. 그러나 남자는 1년도 되지 않아 군대에 갔다.

‘이 여자가 남자 복은 없군.’

서경숙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많은 여자들이 평생을 살면서 여러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남자를 만나 순탄하게 결혼하여 아이 낳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지만 어떤 여자는 남자들을 만나면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기구한 삶을 사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

윤사월도 그런 여자였다. 어머니의 첫 남자는 전쟁으로 죽었고 두 번째 남자는 온전히 그녀의 남자가 아니었다.

윤사월은 황민우에게 버림을 받았고 두 번째 남자는 군대에 가면서 헤어졌다. 구로동 공장에서 여공 생활을 하다가 윤사월은 다방에 취직했다. 다방이 공장보다 월급을 두 배나 주었기 때문이었다.

70년대의 다방은 어디에서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다방에서 계약서를 쓰는 등 사무실 역할까지 했다. 다방을 연락처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방은 손님들을 접대하기 때문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옷을 예쁘게 입어야 했다. 윤사월은 다방에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는 젊고 예뻤다. 다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녀를 찾고, 그녀에게 주문을 하고, 그녀에게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그녀의 엉덩이를 더듬는 사람도 있었다.

윤사월은 다방에서 다시 남자를 만났다. 그와 동거에 들어갔다. 그와의 동거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은 몇 달 가지 않았다. 남자는 인쇄소에 다녔으나 월급이 많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여 늘 취해서 살았다. 인쇄소에도 나가지 않아 생활비도 그녀가 벌어야 하고 용돈까지 주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를 두 번이나 지웠다. 남자는 그녀에게 주먹질까지 했다. 그녀가 일하는 다방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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