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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문재인 정부의 농정방향에 대한 제안- 김종덕(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기사입력 : 2017-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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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서 밝힌 농정방향에 대해 농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농민들과 농민단체, 농업 및 농촌 연구자들은 촛불민심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의 농정혁신에 기대가 컸으나 막상 발표된 농정방향은 기존 농정의 재판이라고 할 정도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몇몇 농업관련 단체는 즉각 이를 문제 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동대응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혁신적인 농정방향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는 한 농업계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방향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새 정부의 농정은 농업에 대한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 정책의 나열에서 벗어나 농업에 대한 생각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농업이 효율성을 중시하며 시장경제에 맡겨도 좋을 여러 가지 산업 분야의 하나인지 아니면 국방처럼 생존에 필수적이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보루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동안 농민단체와 농민들은 농업을 시장경제 영역인 소비재가 아니라 물, 공기와 같은 공공재로 다룰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농민단체와 농부들의 이러한 주장을 농정에 반영하려면, 농정에서 농업은 농민만의 것이 아니며 더더구나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농업은 땅, 물, 공기, 생물다양성, 경관, 문화, 건강, 즐거움, 공동체에 두루 영향을 끼치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삶의 질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문재인 정부의 농정에서는 농업에 대한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서 밝힌 문재인 정부의 농정은 너무나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정책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은 국민 누구나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인 식량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충족시키는 동시에 식량자급률을 끌어 올려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식량권,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10~20년의 장기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라 임기 중의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제시한 미봉책들은 침몰하는 농업을 막을 수 없고 침몰을 늦추는 역할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지금은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농업 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문재인 정부의 농정은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날 농업의 위기상황을 고려할 때 직접지불제의 단계적 확대나 복지서비스 향상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직면한 농업 위기를 근원적으로 탈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농정 패러다임은 농업의 어려움이 농업 내부에 있다고 보고 농업 내부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쌀 재고는 점점 늘어나 보관비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르고 있다. 자급률이 2%도 채 안되는 국산 밀도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날 농업 위기의 본질은 농업에 있지 않다. 달리 말해 농민들에게 그 책임이 있지 않다. 농업을 둘러싼 외부의 변화 없이 농업을 살릴 수 없다. 국민들을 조리하게 하고, 수입농산물이 아니라 국산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찾는 음식 시민으로 양성시키면서, 소비자가 스스로를 “농사짓지 않고 있지만 농민”이라는 공동생산자임을 자각케 하는 정책이 농정의 핵심 정책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농업과 먹을거리는 심각한 위기 상태다. 농민들은 영농을 통해 재생산이 안 되어 영농의욕을 잃고 있다. 국민들의 밥상은 정체불명의 수입먹을거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에서는 역대정부의 농정과는 달리 식량주권, 국민의 식량권과 연계해 농업과 먹을거리를 인식하고, 농업과 농업을 둘러싼 외부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우리나라 농업과 먹을거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효적인 조치를 담아야 한다.

김종덕(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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