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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父子 독립운동가’ 109년만에 빛 봤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만석꾼 김병희·김교상 부자

기사입력 : 2017-10-16 22:00:00


하동의 한 재야사학자가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남 동부지역에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순국한 양산 출신 만석꾼 의병지도자 김병희(金柄熙·1851~1908)·교상(敎相·1872~1908) 부자의 항일행적이 담긴 문건을 순국 109년 만에 발굴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LH토지주택박물관에 소장 중인 ‘진중일지’(1908년 일본군 보병 작성) 등에서 양산 김병희 부자가 영남 동부지역 의병장 서병희에게 군용금 5000엔(현재 50억원 상당)을 지원했다고 적시된 문건을 16일 공개했다.

그는 또 김 부자가 영남지역에서 의병 200여명을 규합해 양총(미제 군총)과 권총, 대구경총 등의 최신 화기로 무장하고 양산·밀양·울산·부산·경주·청도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문건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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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양산시 동면 산지마을 경주김씨 재실에 있는 김병희 의병장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경남독립운동연구소/



이와 함께 김병희 의병장 순국 후 1908년 세운 묘비(땅속에 묻혀 있었던 비석을 묘 이장을 하면서 최근 발굴) 비문과 제적등본(김교상 사망일자 확인), 경주김씨 족보 등에서 그의 구체적 행적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식문건에서 김교상의 사망 확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군자금 5000엔은 당시 전국 최다 금액이라 할 수 있다. 두 부자는 이같은 일로 일본군에 체포돼 1908년 6월 통도사 인근에서 57세와 36세에 각각 총살됐다.

이번 서훈 신청과 관련, 정 소장은 “그동안 김 부자에 관한 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폭도에 관한 편책’, 허정(1896~1988)의 ‘내일을 위한 증언’, 양산지역 향토지 등에 부자의 활약상이 기록돼 있으나 사료가 충분치 못해 정부 서훈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에 김병희 의병장의 후손 김중경 오경농장 회장과 엄원대 가락 양산역사문화연구소 연구실장, 이형분 수석연구원, 김규봉 양산향토사연구가, 최영자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 7년간에 걸친 사료수집 노력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료 수집에 힘써온 후손 김중경(84·양산시 상북면)씨는 “선대 할아버지가 일제와 맞서 싸우다 순국했다는 이야기는 집안 어른들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뚜렷한 행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재익 기자 ji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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