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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안아 주세요- 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사입력 : 2017-10-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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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내가 어김없이 눈물을 쏟는 장면이 있다. 한없이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면서 ‘한 번만 안아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만난 가족이 ‘한 번만 안아보자’고 말하는 순간에 정말 어김없이 나는 눈물을 흘린다.

헤어지는 순간에 ‘안아 달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것이며, 만남의 순간에 ‘안아 보자’는 것은 떨어져 있던 세월 속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처럼 ‘껴안다’에는 단순한 스킨십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 받아들임, 기억 등의 의미가 안는 동작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올해 새내기 신입생이 된 딸애가 ‘세월호 서포터즈’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그 또래의 아이들을 보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그래서 세월호가 목포로 올라오는 날,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새우는 행사에는 솔직히 딸애가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중에 딸애가 전해 준 그날의 이야기에서 또 어김없이 나를 울린 말이 있었다. 바로 ‘한 번만 안아보자’는 말이었다. 세월호에서 딸을 잃은 한 엄마가 우리 딸애를 보고 한 말이다. 잃어버린 당신의 딸과 닮았다는 내 딸을 안으면서, 당신 딸의 이름도 가르쳐 주고 그 딸의 이야기도 하더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그 어떤 활동보다 너희들이 와서 이렇게 안아주는 게 정말 큰 위로가 된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은 그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고, 그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안아 준다는 것은 내 속에 있는 따뜻함으로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혹은 차가워진 상황을 녹이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서양식의 ‘프리허그’가 아니라 우리식의 따뜻한 ‘안아줌’의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은정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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