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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시재생 건축물 재활용에 길을 묻다 (1) 군산 근대문화지구

버려졌던 아픈 역사, 관광명소로 살아났다

기사입력 : 2017-11-15 22:00:00

바야흐로 도시 재생이 화두다. 왜 도시재생일까? 과거 개발지향적인 도시 확장은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이 인근 지역과의 양극화를 야기했다면 도시재생은 주변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기능을 상실한 건축물 등 늘어나는 유휴공간 활용에도 도시재생은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산업시설, 공공건축물 등 기능을 상실한 유휴공간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지자체마다 버려지는 공간은 고민거리다. 국내에서도 유휴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됨에 따라 재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유동인구가 감소하거나 쇠락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자체들은 도시재생을 해결 카드로 꺼내들고 있다. 그 시작점은 용도 폐기된 건축물의 재활용이다.

유휴공간을 새로운 생산의 공간이자 사회적 기능을 담은 교류의 장으로 재창조해 활용하고 있는 국내외 성공 사례를 살펴보고 각 지역의 특성에 따른 시사점을 도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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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은행 군산지점.



◆아픈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전북 군산시 장미동 내항 일원에 위치한 군산 근대문화지구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근대산업시설을 활용해 조성됐다. 1899년 5월에 개항한 후 일제강점기 동안 미곡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군산항은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현재 군산 시내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170채가량이다. 군산항은 근대문화지구로 탈바꿈하면서 근대역사의 중심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해망동 근대역사거리에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과 옛 일본 18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미술관), 옛 군산세관(관세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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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을 리모델링한 군산 근대건축관 내부.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재탄생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해 1922년에 신축한 은행건물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 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의 상권을 장악하는 데 초석을 쌓아 일제 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다. 지난 2008년 복원 과정을 거쳐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재탄생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벽돌조 사행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건물은 당시에는 큰 규모로 군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고 목조트러스의 형태와 구성 방법은 국내 근대건축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이효숙 문화관광 해설사는 “군산지점은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하다가 광복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30년 정도 은행 업무를 봤었다”며 “이후에는 개인에게 넘어가 예식장, 노래방, 심지어 나이트클럽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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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관으로 재탄생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약 100년 전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된 옛 일본 18은행 군산지점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숫자 18은 은행 설립인가 순서를 의미한다. 군산지점은 조선에서 7번째 지점으로 1907년에 설립됐다. 군산의 18은행은 주 업무가 무역에 따른 대부업으로 역시 일제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했던 은행이다. 광복 후 대한통운 지점 건물로 사용됐으며 2008년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복원을 통해 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탈용 쌀 보관 창고였던 옛 대한통운 창고는 장미공연장으로 변신했고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근처에는 당시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 등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관 건물에는 각종 기획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또 본관 뒤편 부속건물 1층에서 강점기 당시 금고를 볼 수 있고, 안중근 의사의 여순감옥을 재현해놓는 등 강점기의 역사를 재현해 놓았다.

군산항 내에는 수위 변화에 따라 오르내리는 선착장인 ‘뜬다리’ 부잔교 3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일제 수탈과 항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곳이면서도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근대의 거리를 볼 수 있는 시간 여행지이다. 방문객들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지난 2012년까지 무료로 운영되다 방문객이 급증해 이듬해 유료화했다. 2013년 유료 방문객 22만4027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102만6072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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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미술관.



◆늘어나는 방치 건축물, 재활용을 택하다= 군산시가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1990년대부터 가속화된 원도심 공동화 때문이다. 원도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시청과 법원, 검찰청 등이 외곽 신시가지인 조촌동으로 옮겨가면서 자연히 내항과 월명동 등 원도심은 공동화됐고 근대건축물도 방치되다시피 했다. 시는 방치된 근대건축물을 활용할 방안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지만 공동화가 가속화되면서 방치 건축물은 늘어만 갔다.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강점기의 잔재로 청산이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처음 사업추진 시 “우리 것도 활용 못하면서 일본식 건물에 투자하느냐”는 일부 시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군산부청(1928년 건립)이 헐렸고 일본인들이 세웠던 보국탑과 자우혜민비, 개항 35주년 기념탑 등은 철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군산시는 원도심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철거보다는 재활용을 택했다. 이 같은 선택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지역문화 재생 공모사업에 ‘근대산업유산 벨트화 사업’으로 선정되는 결과를 낳았고 사업비 100억원을 확보하면서 큰 동력을 얻었다.

군산시는 2008년부터 근대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근대문화유산들을 일제의 잔재로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과거를 엿볼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처럼 재활용의 가치는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군산시는 매년 10월 근대문화지구 일대에 100년 전의 거리를 볼 수 있는 시간여행축제도 열고 있어 관람객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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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만든 ‘뜬다리’ 부잔교.



원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지가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근대문화지구가 조성되기 전보다 지가가 몇 배 껑충 뛰어오르면서 향후 부지 매입 등 시의 사업 추진에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중규 군산시 근대역사박물관 운영계장은 “군산은 근대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여행지로 특화된 공간이자 빼앗긴 시대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장소로서 관람객들의 재방문율이 매우 높다”면서도 “지가가 상승하다 보니 오히려 원도심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람객이 늘수록 주변 시설에 소비성 업종만 살아남아 역설적으로 문화적 색깔이 옅어질 우려가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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