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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풀뿌리 주민자치조직을 조직화하자- 최낙범(경남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입력 : 2017-1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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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이를 기념해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제5회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렸다. 개막식에서 지방정부 4대 협의체는 주민이 국가와 지역의 주인이라는 ‘자치분권 여수선언’을 했다. 이날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회 시도지사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인 자치분권정책을 추진하는 ‘자치분권 로드맵안’을 발표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자치와 분권을 실현하겠다는 열망과 의지가 분명하고 확고하다.

왜 자치와 분권인가? 우리나라는 기초정부인 75개 시, 82개 군, 69개 자치구와 광역정부인 17개 시·도가 있다. 각 지방정부는 대의기관인 의회와 집행기관인 단체장이 주민을 대표해 주민복리를 위한 자치사무와 중앙정부가 위임하는 사무를 처리한다. 기초정부는 광역정부가 위임하는 사무도 처리한다. 사무를 처리하는 비용은 지방정부가 부과 징수하는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조달하기 어렵다. 상당 부분을 지방교부세와 같은 국세 수입에 의존한다. 이러한 자치시스템은 지방정부의 자주성, 자율성, 자립성을 제약하고 자치의 자유를 구속한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사무와 재정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정부가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권화된 사무와 재정 권한을 스스로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을 대표하는 지방정부의 의회, 장, 공무원이 자치능력이 있어야 하고, 주민이 주인이라는 자치 의식과 문화가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기초정부는 그 규모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크다. 기초정부인 226개 시·군·구와 세종특별자치시와 제주특별자치도를 합한 평균 인구 규모는 22만7000명 정도다. 일본 기초정부인 791개 市 , 744개 町, 183개 村, 23개 區의 평균 인구 규모는 7만2600명 정도다. 우리가 일본보다 3배 많다. 교통·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행정기능의 수비범위가 확대되고 지방정부의 규모도 광역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렇지만 자치의 역사와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 기초정부는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주민이 자치 의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체감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기초정부의 행정구역인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시범적으로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성과 권한은 풀뿌리 민주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있다. 자치선진국의 경우 기초정부의 광역화와 함께 근린자치, 동네자치, 마을자치란 이름으로 풀뿌리 주민자치조직을 활성화하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우리도 주민이 주인이 되는 자치를 체감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근린자치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 주민자치조직을 형성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도시지역은 지역과 직능을 대표하는 다양한 자치조직을 제도화해서 주민의 공동체 의식과 자치 문화를 육성 발전시키고, 그것을 기초정부의 자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아파트지역에는 거주 주민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마을자치회, 상가지역에는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인자치회,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학교자치회, 산업지역의 기업들은 직원의 규모에 따라 독자적인 기업자치회나 여러 기업들이 함께 하는 기업연합자치회 등을 결성해서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주민자치조직으로서 법적 지위와 권한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풀뿌리 주민자치조직을 조직화하고 그들을 기초정부의 파트너로 삼아 주민이 주인이 되는 주민자치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자치의 지름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자치와 분권의 실현을 열망한다면 주민자치의 토양을 튼튼히 하는데 정책적 뒷받침을 우선해야 한다.

최낙범 (경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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