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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지역예술가로 산다는 것-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기사입력 : 2017-11-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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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들어서면 차도 중앙에 ‘몽땅 플라타너스’ 두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들이 처음부터 키가 작은 건 아니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2016년 8월 초 좌회전과 유턴 차로를 늘린다는 계획 하에 가로수를 세 그루 정도 베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오후 5시 즈음 근처를 지나던 예술가 한 명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몸으로 굴삭기를 막았다. 동시에 지역문화예술인 네트워크 단체 카톡방에 상황을 공유하고 도움을 청했다. 불과 30분 만에 1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달려왔고 실랑이 끝에 공사는 중단됐다. 공사 담당자들은 당황스러웠지만 늦은 오후의 상황은 지극히 우발적인 사건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모인 예술가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남아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녁이 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현 상황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 결정은 빨랐고 행동은 더 신속했다. 나무를 지키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나무가 잘린 사실을 알려야 했다. 모인 이들은 연극과 시각예술, 영상,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었다. 캘리그래피로 ‘나무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플래카드를 제작했고,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나무를 종이로 만든 꽃으로 감싸주었고, 작업했던 굴삭기를 랩으로 싸버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주민들은 간밤에 벌어진 광경을 목격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 예술가들의 작업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마을 입구에서 수십 년을 지켜오던 나무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왜, 나무를 잘랐을까? 질문이 모이자 여론이 형성됐고, 나무를 살리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전문가 의견을 받는가 하면, 공사 중단 서명운동, 가로수 보존에 대한 정책 제안도 이어졌다.

이후 주민들의 요구로 공청회가 열렸고 유치원생부터 80대 노인까지 150 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나눴다. 구청에서는 공사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자발적인 토론회가 더 진행되었고 주민 대표단이 구청장 면담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공사는 중단됐다. 애초 세 그루를 제거하려던 공사는 두 그루를 그대로 남긴 채 종료됐다. 나무를 자르고 죽이려던 행정은 나무에 도포를 발라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후 ‘성북동 나무’라는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예술가뿐만 아니라 정치, 환경, 마을공동체, 상인, 일반 주민 등 다양한 지역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초대되고 상황이 공유되었다. 현재 나무는 잘 자라고 있고, 지난봄과 여름에는 풍성한 잎사귀를 자랑했다.

이 사건은 과정 자체가 마을공동체와 직접민주주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란 누구인가’라는 새로운 문제 제기와 맞닿아 있다. 처음 공사를 막은 사람이나 실시간 현장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모두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였다. 그들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나무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바르기 때문에 달려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연이나 축제 등을 함께 경험했기 때문에 달려왔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처럼 성북에 살면서 타 지역에서 활동했다면,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섰을지 의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라는 개념은 단순한 주거지로서가 아니라 일상적 삶과 경험의 문제이다.

전국적으로 마을만들기나 사회적경제, 문화예술사업 등을 통해 사라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의 측면에서 보자면, 공동체의 강조가 ‘모두를 위한 예술’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한 예술’에 가깝다. 이때 예술은 ‘지역성’의 문제와 결부된다. 지역성은 곧 뿌리의 문제이다. 뿌리와 근원은 다르다. 근원은 과거와 닿아 있지만, 뿌리는 현재의 문제이자 경험으로서의 삶과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의 ‘자치’와 ‘분권’이라는 화두는 적절하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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