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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시재생 건축물 재활용에 길을 묻다 (3)

(3) 스페인 레이나소피아·마타데로·빌바오

종합병원·도축장이 도시 살리는 ‘랜드마크’ 됐다

기사입력 : 2017-11-29 22:00:00


스페인은 1970년대부터 경제 침체에 빠지며 80년대에는 실업률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산업 위기를 겪었다. 쇠락한 도시를 살릴 방법은 도시를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기능을 다한 공공시설물 등 노후화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문화에 대한 투자다. 즉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은 도시재생이다. 그 구심점에는 중앙정부의 정책 주도가 아닌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지방정부와 민간의 땀이 있었다.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의료기관 역할 다한 종합병원 리모델링
피카소·고야·달리·미로·후앙 그리스 등
당대 유명작가 작품 전시로 관람객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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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사바티니가 계승한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피카소를 품은 종합병원=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은 3000여 점의 그림을 비롯해 5000여 점의 판화, 1500여 점의 조각품, 비디오, 사진물 등 1만6000여 점의 20세기 및 현대미술 관련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피카소를 비롯해 고야, 달리, 미로, 후앙 그리스와 같은 스페인이 배출한 당대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이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쟁의 만행을 고발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장소인 이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져 20세기까지도 종합병원이었던 곳이다. 한때는 지역 최대의 병원이었지만 1960년대 종합병원의 기능을 상실했고 1970년대에는 의료기관의 역할마저 잃었다. 당시 지역에서는 건물을 철거하자는 여론도 일었다. 독재자 프랑코가 1975년 사망하면서 한때 그의 소유였던 잔재물을 없애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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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하는 방문객들.



하지만 이 건물은 프란체스코 사바티니가 계승한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역사성을 띠고 있어 철거보다는 보존에 여론이 기울었다. 1977년 국가문화유적으로 승인된 후 1980년부터 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부분적으로만 전시회를 열다가 건물 일부를 보수해 1986년 레이나미술센터로 개관했다. 1988년 국립미술관으로 승격했으며 1992년 9월 10일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으로 재설립됐다. 건물 내부는 종합병원으로 쓰일 당시 천장과 벽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닥의 타일 정도가 새로 깔렸을 뿐이다. 지난 2005년 3개 신관을 지어 미술관을 확장했지만 기존의 건물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됐다. 신관에는 음악당과 도서관, 카페테리아, 사무실 등이 자리 잡아 지역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쓰인다.

미술관 가이드인 미리암 발보사 베르가라씨는 “기존 건물을 재활용해 건축비용 절감 등 효율적인 면도 컸고 미술관으로 차츰 자리잡으면서 관람객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일조했다”고 말했다. 레이나소피아 관람객은 지난 1994년 연간 70만명에서 2007년 150만명, 지난해에는 연간 350만명으로 늘어났다.


☞마타데로 아트지구

폐쇄 후 장기 방치된 옛 도축장 건물 활용
미술·문학·영화·사진·건축·디자인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름나 지역사회 활기


▲도축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마드리드에 위치한 마타데로 아트지구는 공연과 전시 미술관이 있는 복합문화센터다. 스페인어로 마타르는 ‘죽이다’는 뜻으로 마타데로는 ‘도축장’을 뜻한다. 의미 그대로 마타데로는 과거에 도축장이었다. 마타대로에 들어서면 내부에는 전시·공연시설과 창작작업실이 배치돼 있지만 낡고 허문 벽과 소각을 위한 커다란 굴뚝 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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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복합문화센터 ‘마타데로 아트지구’.



과거 도축장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지 않고 오히려 옛 모습과 새로운 기능이 자연스레 공존하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마타데로는 1927년부터 1996년 폐쇄 때까지 가축을 도축해 마드리드 시민들에게 고기를 공급해온 시설이었다. 폐쇄된 후 계속 방치되다가 마드리드 시가 2007년부터 복합 문화시설로 바꿔 2011년에 면적 14만8300㎡ 규모로 정식 개장했다. 시는 이곳을 문화지구로 복구하면서 최대한 보존에 중점을 두었다. 심지어 과거 큰 화재를 겪어 곳곳에 불에 탔던 도축장의 흔적도 그대로 남겼다.

혐오시설이던 도축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마타데로 일대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타데로 아트지구는 미술, 문학, 영화, 사진, 건축, 디자인, 패션 등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시민에게 제공하면서 관람객도 더불어 증가했다. 마드리드 시 관계자는 “마타데로 아트지구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주변도 덩달아 발전하게 되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게 됐다”면서 “관광객이 늘다 보니 인근 주택가격 등 지가가 상승해 원래 주민이 외곽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부작용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고 말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쇠퇴하던 지방공업도시 재생 위해 건축
독특한 디자인과 조형적 아름다움 뽐내
한 해 수입 수십억달러 관광도시 발돋움


▲쇠락한 도시가 국제도시로, 건축물로 문화를 입히다= 랜드마크(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란 이런 것이다. 바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네르비온 강을 끼고 물고기 비늘처럼 3만3000개의 티타늄을 외관에 부착한 이 건물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잉어가 팔딱거리는 듯하다. 미술관 입구쪽에는 인공으로 물을 가둬 놓아 마치 미술관이 강에 떠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옆에는 빌바오의 관문이었던 살베 다리와 접해 있어 빌바오의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가 작품이다. 지난 2010년 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은 최근 30년간 세워진 건축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꼽기도 했다. 독특한 디자인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이 건축물은 항구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빌바오 효과는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도시 공간 활용의 성공 사례로 회자되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 효과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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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스카야주 빌바오시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



쇠퇴해가던 지방공업도시인 빌바오는 1997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시설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경제적인 부흥을 일궈냈다. 1997년 개관 이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독특한 건축물을 보기 위해 인구 40만명이 되지 않는 빌바오시에 한 해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고 수십억달러의 관광수입이 생겨났다. 1000여 차례의 콘퍼런스가 열리는 빌바오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도 70개로 늘어나는 등 주변 인프라가 구축돼 가히 국제도시로 손색이 없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빌바오 리아 2000’이 있어 가능했다. 쇠락한 공업도시를 문화도시로 구조 자체를 바꾼 것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지역사회 스스로였다. 1992년 창설된 ‘빌바오 리아 2000’은 빌바오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정책 추진에서 공공기관 간에 협의점이 힘들다고 판단돼 6개 단체가 힘을 모아 기구를 만들었고 빌바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기구는 공기업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수익금을 다시 도시재생에 투자하고 있다. 아시에르 어바운사 로벨르스 빌바오 시의원은 “빌바오는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스스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했고 구겐하임 박물관을 기점으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며 “새로운 도시 복구와 재생에는 시민의식의 변화와 지역사회, 지방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용훈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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