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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느림에 대하여- 정정화(소설가)

기사입력 : 2017-12-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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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지나는 강변마을에 매화가 피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얀 꽃송이를 막걸리잔 속에 띄웠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매화가 수를 놓고 강은 유유히 흘렀다. 잔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이파리를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는 지금, 매화 향은 사라지고 쉬쉬 찬바람이 오래된 나목을 스친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매화나무 옆 국숫집은 한산하다.

완행버스를 타고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가는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 튼튼한 다리를 가진 나지만 흔들리는 버스로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줬다. 몇 정거장 지났을 때였다. 벨이 울리고 승객 한 명이 내렸다. 차창 밖 정류장에는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챙겨 버스를 타려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버스와의 거리는 열 걸음 남짓. 기사는 유령을 본 듯 바람을 일으키며 차를 출발시켰다. 무거운 보따리를 든 할머니는 비치적거리며 쫓아오다가 멀어지는 버스를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기사는 분명히 할머니를 봤을 텐데 왜 그냥 스쳐 지나는 건지 궁금했다. 배차 간격이 30분이나 되는데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려야 할 할머니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왔다. 이 장면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건 내가 유사한 일을 두어 번 더 목격했다는 점이고, 비슷한 일들이 다른 장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서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례를 보면,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도 노인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 분위기를 흐려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구석 자리에 앉게 하거나 아예 입장조차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노인 경시 현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21세기에 노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에 반비례해서 고령화 현상으로, 노인들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에 소중히 여겼던 효나 노인 공경에 대한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병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지배당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승차 거부나 서비스 미흡에 대해 발 빠르게 신고하지만 노인들은 그나마도 쉽지가 않다. 청소년 1000명에서 1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답변을 한 한국 학생이 23.3%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나왔다고 한다. 무엇이 우리 청소년을 이렇게 도덕 불감증에 걸리게 했을까? 이것은 가치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의, 식, 주 면면에서 오래 숙성되거나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많았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는 느림의 시간과 노동이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편리한 물건이 만들어지고 간소화되었음에도 현대인은 만족하기보다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각박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느림의 삶을 실천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겪은 세대의 고통과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사지를 건너 질곡의 삶을 견디고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그분들이 경제 논리에 밀려 소외되고 있다. 뿌리 없는 문화가 있을 수 없고,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으며, 기성세대 없는 신세대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늙어간다. 머지않은 미래에 젊은이 또한 노인이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함몰되지 말고 노인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순 없을까. 노인이 행복한,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인간적이고 느린 사회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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