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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도시재생 건축물 재활용에 길을 묻다 (4)

(4) 독일 우파파브릭·반호프

버려진 공간에 문화 담으니 새로운 명소 ‘탄생’

기사입력 : 2017-12-08 07:00:00


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경제성장을 일궈낸 독일(옛 서독)은 급속한 도시 재개발이 이뤄졌다. 하지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은 지역 간 불균형을 이뤘고 산업변화에 따른 인구 감소 등 방치되는 부동산이 증가하는 이른바 도시축소가 나타났다.

도시 곳곳에 생겨난 빈 땅과 건물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위한 도시재생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특히 통일 이후 베를린은 도시재생의 시험대였다. 서로 다른 환경과 체제에서 살아온 동서독 주민들이 공존해야 하는 공간인 베를린은 재개발보다는 그들이 살아온 기존시설을 활용하는 도시재생이 더 유용했다. 팽창 위주인 개발보다는 이들의 문화를 융합할 수 있는 공존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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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우파파브릭 내 대안학교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마을공동체 된 우파파브릭

방치된 영화제작소가 자립센터로 변모
생태마을이자 예술가 일자리 제공 공간

◆버려진 영화제작소가 마을공동체로= 베를린 남쪽 시내 중심가 포츠담 템펠호프에 위치한 우파파브릭은 하나의 마을공동체이다. 면적 2만㎡인 마을에는 3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자립센터, 주민센터, 체육관, 유기농빵집, 자연식품점, 카페, 게스트하우스, 어린이 서커스 학교, 대안학교, 동물농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거주민은 30여명이지만 관련시설 근무자는 200여명이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이곳은 여러 공간을 활용해 문화·운동·체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열린다. 환경친화적인 시설도 돋보인다. 태양열 발전시설이 있으며 집집마다 빗물을 재활용하고, 곳곳에 나무를 심어 녹지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유기농 빵을 자체 생산해 인근 도시에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돼지, 소, 말 등이 있는 동물농장은 체험시설로도 각광받고 있다. 유명 공연예술 이벤트와 축제를 개최하는 등 여러 행사를 통해 인지도를 쌓으면서 이곳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곳은 국제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독일 내 문화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문화프로그램 등 연간 300회 공연이 이루어지는 문화교류의 장소이다. 친환경 기술을 도입해 거주자와 활동인력들이 상주하는 생태마을이자 예술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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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파브릭 내 게시판에 주민들이 행사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그런데 과거 이곳은 영화제작소였다. 독일 최대 영화사인 우파(Universal Film Association, 유니버설 영화배우협회)가 1920년부터 1961년까지 운영한 영화제작소였다. 필름 편집과 후시 녹음, 영화 상영이 성행했던 이곳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기면서 촬영소는 서베를린, 현상소는 동베를린으로 나눠져 공동작업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우파 영화소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고 1965년께 이 지역의 영화산업은 완전히 정지되어 버려진 공간이 됐다. 베를린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우편사업소로 활용하려고 했으나 계획에만 그치고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버려진 곳이 1970년대 후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대안적 공동체 실험을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협회를 조직해 1979년 우파파브릭(UFA FABRIK)이라는 이름을 짓고 공동체를 꾸렸으며 한때 100여명이 새로운 삶을 위해 이주했다.

처음에 이들이 이주할 때 불법점유라는 이유로 베를린시와 갈등도 빚었다. 하지만 거주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시민들에게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시를 설득해 6개월에서 1년간 매번 임대계약을 맺었다. 베를린시로서도 버려진 공간을 방치하는 것보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1988년까지 단기계약을 계속 반복해오다 우파파브릭의 자체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인정한 베를린시는 아예 2035년까지 50년간 장기계약을 맺었다. 운영 예산의 60%는 정부가 지원하고 40%는 지역공동체가 자체 충당하고 있다.

우파파브릭 인터내셔널 문화센터의 프리돌린 힌데(Fridolin Hinde) 소장은 “처음 이곳에 거주한 시민들은 문화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불법점유로 시와 갈등을 겪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으로 거주 허가를 얻어냈다”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며 20만~30만명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관이 어떻게 협업해 공간을 재활용해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여러 나라와 기관에서 방문이 늘고 있다”며 “지역공동체로 공간을 재활용하고 개발하는 일에 자문 등 직간접적인 활동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반호프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옛 기차역
두 차례 복원 거쳐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전쟁의 파괴 딛고 미술관으로 거듭나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5~10분 거리에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1만㎡ 면적의 미술관의 주요 전시물은 20세기 이후 제작된 현대예술 작품이다. 현대예술의 두 거장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는 곳으로 넓은 공간에 큰 설치작품도 볼 수 있으며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은 19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은 1846년 완공됐으나 1984년 새 노선으로 바뀌면서 1906년부터는 교통·건축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면서 그마저 문을 닫았다. 1987년 베를린 탄생 750주년을 맞아 건물 일부를 복원해 현대미술전을 열었다. 이후 완전한 복원을 거쳐 1996년 지금의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반호프 현대미술관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 등 위기를 겪었지만 유럽의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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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맥주양조장 건물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독일 쿨투어부라우어라이.

문화복합공간 쿨투어부라우러라이

맥주 양조장을 문화교류 공간으로 개발
문화 장소이자 문화 관련 상업시설 입점

◆버려진 맥주양조장이 동·서독 주민의 문화교류의 장으로= 베를린의 문화복합공간인 쿨투어부라우어라이는 맥주 양조장을 재활용한 곳이다. 1842년 처음 이곳에 양조장이 세워져 맥주산업의 활황을 타고 일대에 양조장 건물이 늘면서 지역산업을 일구어 온 곳이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로 1962년을 끝으로 이 일대 맥주공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곳 외에도 다른 맥주공장이 호황을 누린데다 현대화 설비 투자를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1970년대에 댄스 공연장으로 쓰이다 방치됐다. 지역사회에서는 동·서독이 통일된 뒤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일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지식인들은 공간 활용에 대해 여러 의견을 냈다. 결국 동·서독의 화합으로서 양측 사람들이 문화를 교류할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자는 여론이 정치권 등에서 일었다.

1991년 다문화의 중심지를 표방하는 ‘쿨투어부라우어라이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문화양조장’으로 변모했고 록, 팝, 재즈 등과 같은 다양한 공연과 전시, 영화 상영, 연극 공연, 페스티벌 등이 개최됐다. 문화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를 비롯해 문화, 예술, 상업공간, 사무실, 비즈니스가 복합적으로 동시에 운영됐고 1998년 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정부 소유지만 신탁회사에 의해 운영되는 방식이다. 외부 지원 기금 없이 운영되다 보니 2000년대 이후 상업용 임대도 늘었다. 문화시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을 비롯해 극장, 카페, 수공예 가구 제작 등 문화와 관련된 상업적 시설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곳의 한 해 방문자는 200만명 이상이다.

쿨투어부라우어라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예술영화 상영, 공연 등 문화의 장소가 주 목적이었지만 시설 유지를 위해 점점 상업적인 시설도 늘었다. 하지만 문화와 관련없는 상업시설은 임대해주지 않는다”며 “여전히 이곳은 출신과 계층에 상관없이 주민들의 교류의 장이자 문화를 제공하는 베를린의 문화중심지이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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