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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기력이 펄펄 넘치는 새해를 기대하며

책 읽어주는 홍아 (8)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리히 프롬)

기사입력 : 2017-12-29 14:15:28


회식·축제의 분위기가 일상을 짓누르는 연말이다. 이런 축제 분위기를 맞이하던 과거의 나는 무기력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하기 싫거나 뭐든 하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혼자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올해도 같은 날을 보내고 있진 않다. 결혼 후 맞는 첫 연말의 포근함이 과거의 연말 무기력을 기억 속에서 가시처럼 도드라지게 했다. 이런 때 우연히 펼친 책이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였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 모두가 일정량의 무기력증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개인에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기억력 감퇴, 회의감, 신경증적 현상은 대부분 무기력에 기인한 것이다. 이 무기력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환경과 이를 자신이 조종할 수 없는 나약함 때문에 발생한다. 더 심한 것은 현대인들은 자기의 의지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무지함은 무기력증을 고치는 것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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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 제시하는 자기에 대한 무지의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미디어다. 어떤 도시가 폭격을 당해 수만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전달할 때도 그들은 사이사이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비누나 포도주 광고를 끼워 넣는다.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이며 권위적인 목소리로 정치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던 앵커가 똑같은 목소리로 광고비를 방송사에 지불한 특정 세제를 사라고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뒤집힌 배의 영상이 사라지자마자 화면에 자동차 썬팅 광고가 등장한다. 과학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보도하던 신문들은 똑같은 지면에 똑같은 진지함으로 신인 연기자의 멍청한 생각과 식습관을 보도한다.

둘째는 결과만능주의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는 활동이 중요한 것인데 우리 문화에서는 무게중심이 정확히 거꾸로 돼 있다. 모든 유·무형의 사물을 돈을 주고 살 수 있고, 돈만 주면 다 우리의 소유가 된다고 여긴다. 우리 개인의 특성과 노력의 성공 또한 돈과 명성, 권력을 위해서 팔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만족은 상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비탈길을 굴러가는 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과정에서 만족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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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우리가 듣고 보는 것에 더 이상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감정과 비판적 판단력의 훼손에 대해 흥분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점점 더 무관심해진다. 관계가 사라진 잘못된 자유가 삶의 질서를 망친다.

이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율성과 개성의 회복이다. 요컨대 에리히 프롬은 자기 스스로 의지로 활동하는 것이 기력을 되찾게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자기 수년간의 경험을 살려 바람의 방향과 습도로 일기예보를 동네사람들에게 알린 어부와 그날 아침 뉴스를 본 여행객의 일기예보가 있다. 후자의 일기예보는 정답일 수 있지만 전자만큼 옳진 않다. 자신의 자율성이 제거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부의 예보에는 자신의 의지가 들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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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부의 태도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과 완전히 새로 태어나고 싶은 소망 사이를 항상 이리저리 오간다. 안정과 변화의 가능성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무기력 타파를 위해서는 놓아버릴 용기, 엄마의 손을 놓고 마침내 모든 안전을 버리고 세상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자신의 힘만을 믿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책을 읽으며 나의 과거 무기력의 원인이 드러났다. 난 남들을 부러워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했고 뭐든 선뜻 행하기 어려웠다. 이후 안정과 변화 둘 다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두려움을 안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책을 통해 과거 나의 발자취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엄격히 말하면 이 책이 반짝이는 어떤 새로운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을 안고 내디딘 발걸음 속의 용기를 다시 상기시켜줬다. 새해 이 용기를 다시 지니고 묵묵히 걸어가겠다. 조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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