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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248) 제22화 거상의 나라 ⑧

“한국에서 살아요”

기사입력 : 2018-0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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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데 밖에 나가야지.”

“동대문?”

“그렇지. 패션타운에 가야지.”

“좋아요. 산사는 좋아요.”

김진호가 동대문에 가려는 것은 유행하는 의류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산사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짓눌렀다. 그녀의 혀가 입속까지 밀고 들어왔다.

“음. 취하네.”

김진호의 말에 산사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산사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계속했다. <청춘무곡>이라는 노래로 중국인들의 애창곡 중 하나다.



예쁘고 작은 새는 한 번 날아가면 돌아오지 않네.

내 청춘도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작은 새야.



이 노래는 중국영화 <스잔나>에 삽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스잔나라는 밝고 명랑한 여인이 시한부 생명에 걸려 죽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배우 겸 가수인 리칭은 이 영화로 아시아의 톱스타가 되었다. 한국에는 1971년 개봉되어 수많은 여인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산사는 복건성 무이산의 찻잎 따는 소녀였다.

무이산은 천하제일 갑부로 알려진 오병감의 차농장이 있던 곳이다. 오병감은 훗날 절강성으로 이주한 뒤에 무역을 하여 대부호가 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상인들이 대부분 절강성에서 배출되었다고 할 정도로 절강상인들은 크게 활약했다. 오병감은 당대의 갑부였을 뿐 아니라 약 1000년 동안의 부자에도 선정되었다.

오병감은 천하제일 갑부로 불렸으나 찻잎을 따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산사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와 함께 찻잎을 땄고, 중학교에 다닐 때는 혼자서 찻잎을 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찻잎을 따지 않았다.

‘한국은 나라는 작지만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든다.’

산사는 한국의 드라마에 매혹되었다. 특히 대장금은 그녀를 감동에 젖게 했다. 그 무렵 오병감을 취재하는 김진호를 만났다. 김진호는 한국방송사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무이산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통역을 부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자리를 알아보던 산사는 기꺼이 통역을 해주었다. 일이 모두 끝났을 때 산사는 김진호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살아요.”

산사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대장금을 촬영한 고궁과 지방의 촬영지를 보면서 너무나 행복해했다. 김진호의 여자로 살아가는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김진호는 산사와 함께 오후 5시에 동대문의류상가로 갔다. 겨울이라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연말연시라 흥청대고 있었다. 저녁 때가 되면 어깨를 부딪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밀레오레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이 공연까지 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