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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이춘우(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기사입력 : 2018-0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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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제천의 한 스포츠 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38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대형 참사가 있었다. 이보다 앞서 11월 2일에는 창원터널 인근에서 인화물질을 가득 실은 5t 트럭이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은 후 화재가 발생하면서 트럭 운전사와 맞은편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 운전자 등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두 사건은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법과 안전 불감증이다.

제천 화재의 경우 단순 화재 사고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이 대형 참사로 번진 이유는 소방법 위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안전 불감증 때문이었다.

2층 여성 사우나장에서는 20명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비상구 통로를 목욕 용품을 담은 철제 선반으로 막아 놓아 탈출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목욕탕 내부의 비상벨은 뒤늦게 작동했고, 각층에 설치된 300여개의 스프링클러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불법 주차도 화를 키웠다. 건물 주변에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면서 피해가 컸다. 불법은 아니지만 외벽 단열을 위해 적용된 드라이비트 공법도 안전 불감증과 무관하지 않다. 이 공법은 스티로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한데도 불구하고 값이 싸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되었고 결국 이런 참사를 낳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창원터널 화재 사고의 경우, 인명 피해 규모는 제천 화재보다 적지만, 화물차 운전자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로 매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제천 참사 못지않게 관심을 두어야 할 사건이다. 도로 위의 화물차들을 흔히 ‘달리는 시한 폭탄’이라고 말하는데, 이 트럭이야말로 진정한 폭탄이었다. 왜냐하면 불 붙은 드럼통들을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차들에 퍼부어 애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낸 트럭은 인화 물질을 과적했고, 제한 속도 70㎞를 훨씬 초과해서 118㎞로 내리막길을 달렸다. 노후한 트럭임에도 불구하고 정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효율과 경쟁만 중시하다 보니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일에 완전히 둔감해져버렸다. 위법과 반칙이 만연해 있다. 결과만 좋다면, 그리고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제천 화재사고나 창원터널 트럭 사고, 멀리는 세월호 사고까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참사 원인은 바로 이러한 생활의 반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운전자는 운전자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반칙에 익숙해져 있다. 비상구를 막아 놓고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한, 지정 주차장이 있어도 나 하나 편하자고 아무렇게나 불법 주차하는 차들이 넘쳐나는 한, 스프링클러를 고칠 돈을 아끼기 위해 아예 밸브를 잠가 놓는 한 제2의 제천 화재는 시간 문제다. 타인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과속과 과적을 일삼는 화물차들이 줄어들지 않는 한 도로 위의 안전은 요원하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수거한 낙하물 건수는 연간 30만 건 안팎이며 이로 인한 후속 차량 사고는 200여 건에 이른다. 시민들의 안전의식이나 준법정신 못지않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절실하다. 소방인력과 장비의 확충, 소방법의 엄격한 적용, 소방차 출동에 방해되는 불법 주차된 차량을 강제로 부수거나 옮길 수 있는 제도 마련, 화물차 낙하물 사고를 원천 방지할 수 있게 화물차의 적재함을 박스화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거의 모든 화물차들의 적재함이 박스형으로 되어 있어 낙하물로 인한 사고를 찾아보기 힘들다. 후진국형 화재 사고와 화물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춘우 (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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