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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경청(傾聽)에 대하여- 정한구(창원고등학교 교장)

기사입력 : 2018-0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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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내 말부터 좀 들어 보세요”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조직과 집단 속에서 어떤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 속에는 토의, 토론, 협의 등을 거치면서 본인이 하는 말의 기회가 남의 말을 듣는 기회보다 월등히 많음을 보여주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또한 리더십 강화 연수 등 직무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 등을 받을 때마다 조직을 잘 이끄는 자질에 가장 우선시되는 관계도구는 경청(傾聽)임을 강조하고 있다. 경청의 실행이 집단 구성원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나아가 그 집단의 목적 달성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 지혜의 수단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경청이란 몸 기울여서(傾) 잘 듣는다(廳)는 뜻이며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한다. 이는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논어의 가르침으로 단순하게 말하고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이며, 생각과 뜻을 공유하고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주의 집중도 공감도 없이 건성으로 듣는, 의미 없는 경청의 자세를 상대방과 눈을 맞추며 공감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화자의 감정과 지성까지도 이해하는 오감을 동원한 경청의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기에 내 귀에 거슬리는 말들은 듣지 않을 뿐더러 남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남을 설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경청이요, 또한 난세를 극복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덕목에 반드시 경청의 실천이 회자되니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경청인 것이다.

전 세계인의 필독서이며 삶의 지침들을 집대성해 놓은 고전인 탈무드에 나오는 글귀인 ‘신이 인간에게 한 개의 혀와 두 개의 귀를 주었다는 사실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를 되새겨본다.

정한구 (창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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