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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18) 진해 ‘새 수양회관’

화려함 사라진 공간엔 사람 사는 냄새 가득했다

진해 중원로터리에 자리 잡은 러시아풍 3층 육각지붕 건물

기사입력 : 2018-01-16 22:00:00

색 바랜 나무창틀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빨간 육각 지붕 아래 2층 처마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허술해 보이지만 기품을 갖춘 그 형태가 예사롭지 않다.

창원시 진해구 벚꽃로 17 ‘새 수양회관’. 일명 ‘뾰족집’으로 불리는 새 수양회관 건물에 관한 이야기다. 세월의 흐름만큼 삶의 애환도 곳곳에 배어 있는 새 수양회관 건물은 현재는 진해의 명소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1920년대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최신식 러시아풍의 3층 목조건물이었다. 일본군 군항이었던 진해에 육각 누각이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3채가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허물어지고 지금의 ‘새 수양회관’ 건물만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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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진해구 새 수양회관.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풍 3층 목조건물이다.



오래된 빛바랜 사진 속에 비친 육각 누각은 일제 강점기에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명소로 기생들이 머물렀던 요정으로 보인다. 하얀 벚꽃이 만개한 복개천 다리 위에 육각 누각을 배경으로 기생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등을 보며 화려했던 건물의 역사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삼각형 모형의 대지 모서리에 출입구를 만든 ‘새 수양회관’ 건물은 아직도 그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는 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일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옛 흔적을 따라 내부로 들어서면 1층에 20여명이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들어서면 일본식 형태의 좁다란 골목을 따라 30여명의 단체 손님이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난다. 맞은편에도 자그마한 공간들이 2개가 더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온갖 종류의 짐들이 들어서 있다.

삐걱거리는 돌림계단을 따라 급경사를 이룬 3층으로 올라서 굳게 닫힌 문을 열면 자그마한 방이 나온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낡고 허름하지만 아마도 오래전에는 숙소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천장은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로 둘러쳐져 있고, 벽면은 물이 새 곳곳이 얼룩져 있지만 창문을 열고 바라본 풍경은 나름 멋이 있다.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지만 예전엔 3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풍광이 꽤나 괜찮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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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양회관 건물주 김형중(79) 옹은 “해방 이후 선친께서 이 건물을 구매할 당시 어린 기억으로 기모노 차림의 기생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남겨진 집기류 등을 살펴볼 때 요정이 틀림없었던 것 같다”며 “건물은 인근 진해우체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식 건축형태였으며 석가래는 동으로 싸여져 있었고, 지붕은 동판으로 덮여 있었지만 물이 새고 낡아서 강판으로 전부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새 수양회관 건물은 허름한 듯 낡은 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과 운치가 있는 곳으로 남겨져 있다.

해방 후 육각 지붕의 새 수양회관 건물은 70여 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육개장·곱창전골 전문점으로 유명하지만 초기에는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 옹은 “진해에서 최초로 중화요리 전문점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 건물이다. 선친께서 부산에 가셔서 직접 중국 요리사를 모시고 와 20년 정도 영업을 했다”며 “바로 맞은편 원해루(영해루)보다 10년 정도 앞서 중화요리를 한 후 한식집으로 간판을 바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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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양회관 옛사진.



이후 또다시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한식집을 운영해 오다 1995년부터 육개장·곱창전골 전문점으로 현재의 조정순(72·여)씨가 20여 년간 영업을 해오고 있다.

조씨의 육개장은 진해에서 꽤나 유명하다.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이곳을 찾는다. 이곳에서 영업을 한 지는 20년밖에 안 되지만 인근에서 오랫동안 육개장과 곱창전골 등을 판매해 30~40년 된 단골이 많다.

40년 단골인 하영호(69·창원시 진해구 충무 1가)씨는 “새 수양회관은 전통이 있는 집이다. 진해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이면 그 맛을 잊지 못해 꼭 한 번씩은 들러 육개장과 곱창전골 등을 먹고 간다”며 “여기 앉아 있으면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정겨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참 좋다”고 얘기를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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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양회관 1층 내부 모습.



오랜 단골손님들은 새 수양회관이 음식점이기 이전에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눈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기분이 좋아서 한잔…, 때론 기분이 나빠서 술잔을 기울이며 동료·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곳이기에 오래 묵은 골방 같아 정이 더 간다고 이야기한다. 회식이 빈번한 해군들에게도 이곳은 자기들만의 ‘아지트’였다.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 배고픔도 서러움도 모두 잊게 하는 일종의 삶의 활력소였다.

새 수양회관 육개장 맛의 비결에 대해 조씨는 ‘국물’에 있다고 귀띔한다. 조씨의 육개장은 곱창까지 들어간 사골 국물을 24시간 쉬지 않고 곤다. 고추기름을 낼 때는 소의 내장 중 한 부분에서 얻은 기름을 넣고 적정 온도에 맞게 볶아 달군다. 잘 익은 홍두깨살은 손으로 쭉쭉 찢어서 넣고 끓인다. 여기에 손맛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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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석으로 쓰이는 새 수양회관 2층.



손님들은 하나같이 새 수양회관의 육개장은 ‘뒷맛이 구수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전혀 느끼하지가 않고 깔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육개장을 맛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찾아오는 손님들은 한결같은 이 집 음식 맛이 오랜 세월 함께한 친구 같다고 말한다.

새 수양회관 조씨는 “뾰족집은 중국 관광객들의 책자에도 소개될 만큼 역사가 있는 건물이며, 우리집 육개장은 전통이 있는 음식이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겉은 비록 볼품없고 낡아 허름하지만 우리들의 삶과 동행한 뾰족집 ‘새 수양회관’은 묵은 된장처럼 구수함이 묻어나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진해의 명소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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