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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뀌꽃 속의 해오라기-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사입력 : 2018-0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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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시대 명문 사학인 문헌공도(文憲公徒)에 적을 두고 공부하여 시인으로 이름이 났다. 그는 과거시험에 몇 번 응시했지만 합격하지 못하였고, 술을 마시며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최충헌 등 무신정권의 권력자에게 관직을 요청하는 글을 지어서 32세 때 전주목(全州牧)에 서기 벼슬을 얻었지만 곧 파직을 당하였다. 그는 40세 때 한림원의 하급관리가 되면서 조정의 문서를 짓는 일을 맡으면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최우가 정권을 담당하자 더욱 중용되어 문하시랑평장사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이규보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형상화한 시들을 많이 창작하였는데, 특히 영물시(詠物詩)를 잘 지었다. 영물시란 대상의 특징이나 생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읊은 시를 말한다. 그럼 이규보의 영물시 가운데 ‘요화백로(蓼花白鷺, 여뀌꽃 속의 해오라기)’를 살펴보자.

前灘富魚鰕(전탄부어하) 앞 여울에 물고기가 아주 많아서

有意劈波入(유의벽파입) 뜻을 두고 물결을 가르며 날아들다가

見人忽驚起(견인홀경기) 갑자기 사람 보고 흠칫 놀라서

蓼岸還飛集(요안환비집) 여뀌 핀 언덕에 도로 모이네.

翹頸待人歸(교경대인귀) 목을 뺀 채 사람 가기 기다리는데

細雨毛衣濕(세우모의습) 가랑비에 깃털이 젖어 있구나.

心猶在灘魚(심유재탄어) 마음은 오히려 여울 물고기에 있는데

人道忘機立(인도망기립) 사람들은 ‘모두 잊고 서 있다’ 하네.

이 시는 제화시(題畵詩)로, 각월 스님의 방 안에 있는 족자 그림이 있었는데, 스님이 이규보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한 것으로 보인다. 여뀌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서 있는 해오라기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이규보가 바라본 해오라기는 탐심이 가득한 존재로 늘 시내 물고기 잡아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였다. 수련에서는 앞 여울에 물고기가 아주 많아서, 해오라기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하여 물결을 가르고 날아든다. 함련에서는 갑자기 사람을 보고 흠칫 놀라서 여뀌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도로 날아 모이고 있다. 경련에서는 목을 뺀 채 사람들 돌아가기를 기다리는데, 가랑비가 내려 깃털이 다 젖어 있다. 미련에서는 마음은 항상 시내 물고기 잡아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잊고 서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뀌는 물가에 흔히 자라는 잡초로 인식되지만, 오염된 물을 정화하기도 하고, 잎과 뿌리는 약용으로, 그리고 꽃은 차로도 활용되고 있다. 어릴적 시골에서는 여뀌를 돌로 짓찧어서 물고기를 잡을 때 이용하는 독초로 생각하였다. 이 시는 해오라기의 생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새로운 의경을 창출해 내었는데, 김종직이 ‘청구풍아’에서 평하였듯이, 탐욕스러운 자가 청렴한 듯이 사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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