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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천재와 간첩으로 불렸던 한 남자의 귀향

기사입력 : 2018-02-28 1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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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는 오랫동안 그를 간첩이라고 불렀습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 -독일 자이브뤼겐 방송 선정-
유럽 현존하는 5대 작곡가 -유럽 평론가 선정-
유사 이래 최고의 음악가 44인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선정-
 
작은 항구도시 통영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윤이상(1917~1995).
 
전세계 음악가들은 그를 천재 음악가로 칭송했지만
고국에서는 그를 간첩이란 이름으로 강제 추방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진짜 간첩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1963년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일이
1967년 박정희 정부시절 '동백림(동베를린) 간첩 사건'으로 둔갑했고
증거도 없이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것이죠.
 
천재 작곡가의 구속에 독일과 세계 음악가들은 반발했고,
1969년 그는 2년 만에 석방되긴 했지만
서독으로 강제 추방됐습니다.
이후 26년간 그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1995년 베를린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진실은 그가 세상을 떠난 10년 후에야 밝혀졌습니다.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동백림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 발표했죠.
 
하지만 한번 씌워진 '간첩'이란 굴레는 질겼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이념 갈등의 중심에 섰고,
한때 그의 이름이 들어간 재단과 행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비운의 작곡가의 삶이 재조명 된 것은
지난 2017년 김정숙 여사가 그의 묘소를 찾은 후입니다.
윤이상 탄생 100주기를 맞아 묘소를 찾은 김 여사는
그의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작은 동백나무 한그루도 심었죠.
 
그리고 2018년 2월 25일,
천재와 간첩으로 불렸던 비운의 작곡가가
긴 세월을 건너 통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추방된 지 49년,
귀향을 그리며 영면한 지 23년 만입니다.
 
부인 이수자씨의 품에 안겨 온 작은 유골함은
통영 정량동 추모공원 봉안당에 임시안치됐습니다.
 
유해는 오는 3월 30일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통영국제음악당 뒷마당에 안치될 예정입니다.
 
죽어서야 고향에 당도한 윤이상,
늘 벽에 통영 앞바다의 사진을 붙여놓고 살았고,
자신의 묘소에 통영에서 온 흙 한줌을 넣어달라 했던,
고향을 향한 사무치던 목마름이 이제 조금 해갈됐을까요.

조고운 기자<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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