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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허허벌판서 일군 산업화 ‘창원의 기적’

[창간 72주년 기획- 무학과 함께하는 온고지신] 창원지역 산업, 어제 그리고 오늘

마산수출자유지역·창원국가산업단지, 찬란했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기사입력 : 2018-03-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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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창원공단관리사무소(현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증축공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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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5일 마산수출자유지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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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4일 마산수출자유지역 창설 16주년 기념 사원 위안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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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2월 16일 창원기계공단 1공구 착공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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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3월 2일 창원공단 세방전지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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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 구인게시판. 1970년대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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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12일 마산수출자유지역 2공구에서 열린 한미산업의 소각로 준공기념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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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3일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청 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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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마산수출자유지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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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9월에 열린 제1호 입주기업체 자가공장 기공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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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 여성근로자들이 일을 마치고 야간학교로 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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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11일 창원공단 동우정기 근로자 300여명은 회사 본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임금인상 등을 보장하며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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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1월 12일 창원공단 내 공장부지 조성공사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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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창원공단 근로자들로 구성된 소리마당이 근로자 대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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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단 조성 초기 모습. 힘찬 문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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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원공단 기아기공(현 위아) 신축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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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원공단 유니온테크놀로지 공장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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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창원공단 진입로 공사.




한국GM 군산공장이 지난달 폐쇄됐죠. GM 창원공장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지역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한때 창원은 마산수출자유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로 명실상부한 한국 기계공업 선도 도시로 자리매김했었죠. 그때의 모습을 한번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은 1970년 1월 수출자유지역설치법이 공표되면서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단지로 태동했습니다. 설치 당시 1, 2, 3공구로 구분해 50만여평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제1차 석유파동에 따른 세계 경제변화 때문에 이 중 26만평이 일반공업지역으로 전환됐습니다. 이때 떨어져 나온 일반공업지역이 지금의 봉암공단입니다. 한때 국내 최대의 공업지역이었던 마산수출자유지역은 2009년 마산자유무역지역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고용인원은 1972년 7106명을 시작으로 해마다 늘어나 1987년 3만6411명을 기록하기도 했었죠. 이때를 기억하고 있는 창원시민들은 퇴근시간이면 수출자유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던 어마어마한 인파를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설립된 이후 꾸준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 2010년부터 수출액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기업 노키아의 갑작스런 철수였죠. 노키아는 당시 마산자유무역지역 수출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 여파가 지역경제를 휘청이게 할 만했습니다.

창원공단은 1973년 11월 19일 첫 삽을 떴습니다. 당시 총면적이 1400만여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공업단지로 개발되었죠. 이 중 650만평이 공업지대, 470여만평이 주거지대, 300여만평이 공공용지로 조성됐습니다. 이듬해 제1단지와 하구단지, 제2단지와 차룡단지가 각각 착공됐고, 국내외의 유수 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입주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습니다. 1970년대 말 창원국가산업단지의 생산액은 4506억원, 수출액은 165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기계산업의 성장·발전에 따라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을 이뤘고, 내수와 수출 모두 큰 성장을 기록하며 입주기업이 속속 몰려들었죠. 여기에 힘입어 1990년대 말 생산액은 16조5000억원, 수출액은 56억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산업환경 변화라는 직격탄을 창원공단 역시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생산설비 노후화, 연구개발 투자 부진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죠. 변화의 주체도 객체도 알 수 없는 변화이지만, 어쨌든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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