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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이로소이다- 이기영(시인)

기사입력 : 2018-03-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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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녘의 들에는 영춘화와 매화가 피었다. 목련도 벙글어서 세상이 환하다. 연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봄볕을 쬐지 않으면 그 따스함을 그대로 낭비해버리는 것만 같아 밖으로 나가보기도 한다.

사람이 빠져있는 자연은 평화롭다. 때 되면 꽃 피고, 꽃 지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진다. 꽃을 밟고 올라오는 나무도 없고, 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큰 나무 홀로 푸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 사는 요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춥다. Me Too와 With You, 그리고 펜스룰(Pence Rule)까지. 나쁜 짓은 나쁜 짓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가 요즈음은 통하지 않고 있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향해 지탄의 목소리와 응원의 목소리가 뒤섞여 니편 내편으로 갈리고 울분과 탄식, 그리고 회의감마저 들어 봄이 봄 같지가 않다.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기가 두렵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거나 존경해 마지않던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린다. 10여 년 전의 일들이 오늘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모두 발가벗겨져 우리 앞에 놓여져 있고,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Me Too’ 운동은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고 고발하기 위해 일어난 운동으로 해시태그(#MeToo)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됐다. 이런 미투를 지지하는 글을 ‘With You’(지지한다, 당신과 함께하겠다)라고 한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는 ‘펜스룰’이 대항 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펜스룰’은 현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2002년 했던 한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됐는데, 오해를 살 만한 만남을 아예 없애 성추문에 휩싸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을 일부 남성들에게는 좋은 방어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회식에 아예 여성을 뺀다거나 업무대화에서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일 등을 펜스룰이라고 언급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당혹감 그리고 반발심이 아예 펜스를 쳐버리는 행위로 변질되는 것이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 없이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는 행동은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남성이나 동성에게 힘의 우위나 권력을 이용해 행사해온 폭력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민본주의나 평등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봉건제도 때나 있을 법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어느 시대, 어떤 사회나 과도기는 있어 왔고,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유지하면서 인간을 생존시킬 전략을 강구해 왔다. 우리는 양성이 평등해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이제서야 남성중심사회에서 완전한 양성평등사회로 옮겨 가는 과도기일는지 모른다.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힘차게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있다. 꽃들과 나무와 사람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계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성(性)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이기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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