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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선진국의 이면- 이상규(정치부장)

기사입력 : 2018-03-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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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영국 런던 공원과 교외에서 본 이국의 풍경 중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장면은 백발인 노인들이 손자나 자식 등 가족이 아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노부부가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에서 평화롭고 한가한 분위기와 함께 한편으론 그들의 노년이 참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는 색다르게 다가온 모습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보는 풍경이 됐다. 아이는 적게 낳고 노인 인구가 넘쳐나는 나라. 한국은 급속히 늙어가는 나라이다. 인구 구조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일반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빨리 달성한다. 서부 유럽이 100~200년이 넘어 이룬 산업화를 우리는 반세기가 채 안 돼 달성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이 수백년 걸쳐 만든 제도를 우리는 반세기 안에 도입하고 정착시켰다. 혹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렇게 빠른 시기에 동시에 이룬 나라가 드물다고 호평한다.

1960~70년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고 민주주의도 잘 발달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 인구 5000만명에 국민소득 3만달러에 다가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처럼 새롭게 부닥치는 문제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인구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1위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을 고령화사회,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을 고령사회라고 하고,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을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약 27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선진국은 어떤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이동하는데 프랑스는 157년, 영국 100년이 걸렸고, 인근 일본도 37년 걸렸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빠른가. 평균수명은 빠르게 느는 데 반해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이 역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이다. 한국이 급속히 늙어감에 따라 사회구조도 급변한다. 한 해 100만명가량씩 태어난 베비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2018년 현재 60살 안팎에 도달해 본격적으로 은퇴하고 있다.

공무원 퇴직자 수를 보면 변화가 실감난다. 공무원 퇴직자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연간 2만∼3만명대였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연간 퇴직자 수는 지난해 4만910명, 올해 4만2361명, 2019년 4만5673명, 2020년 4만7489명, 2021년 4만9493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앞선 일본은 조만간 75세 이상 인구가 65~74세 인구보다도 많은 ‘중(重)노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도 곧바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며, 다른 선진국처럼 고령자 간병과 연금 등 국가적인 부담이 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기에 정부는 노인을 지원의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앞서 그들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륜을 우리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이상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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