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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림책을 보면서- 백혜숙(시인)

기사입력 : 2018-04-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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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무라 유이치라는 일본 작가가 쓴 가부와 메이 이야기가 있다.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폭풍우 치는 밤에’이다. 한참 전에 했던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 이 책의 일부가 인용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많이 오르내린 책이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함께 보았다. 애니메이션으로 봤다고 하면서 시시하다고 하더니 책을 읽는 동안 처음과는 다르게 눈을 반짝이며 그림책을 본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는

“선생님, 이게 끝이에요?” “아~니, 이건 첫 번째 이야기야.” “그럼, 우리 다음 이야기도 읽어요.” “그럴까? 그럼, 다음 주에 함께 보자.”

그래서 오늘 가부와 메이 이야기 두 번째 ‘나들이’를 함께 보기로 한 것이다. 책 제목을 보여주는 순간 아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나들이가 뭐예요? “어?” 순간 좀 당황스럽다. 나들이라는 말이 어렵나? 아니면 낯서나? “어, 이 책을 끝까지 보고 나면 나들이가 뭔지 알거야.”

다 읽고 나서 아이들 반응이 의외다. “아, 나들이가 현장학습 가는 거구나!”

순간 나는 더 놀랐다. 소풍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현장학습이라고 한다. 소풍과 현장학습은 같은 의미는 아닐 텐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현장학습이라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소풍은 놀이가 되지만 현장학습은 놀이에 학습이 따라 붙는 것이니 노는 데도 학습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소풍’이라는 말은 기대와 설렘이었다.

어머니께 몇 밤만 자면 소풍 가는 날이라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말하면서도,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또 먹을 것이 부족하던 내 어린 시절에 소풍은 그야말로 잔치였다. 사탕, 과자, 귀했던 탄산음료가 가방에 들어가고 그토록 먹고 싶던 김밥이 점심으로 등장하는 날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갖고 싶었던 연필과 공책, 크레파스 같은 학용품이 보물찾기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날이다. 보물을 찾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중하기에 지금도 소풍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이렇게 행복한 추억이 많은 소풍이 ‘현장 학습’으로 바뀌었다. 현장학습을 사전에 찾아보니 ‘학습에 필요한 자료가 있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하는 학습’이라고 돼 있다.

동무들끼리 둘러앉아 장기자랑을 하고, 단체게임도 하며 모처럼 학교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던 소풍은 ‘현장 학습’이란 이름으로 바뀌면서 놀이보다는 체험을 통한 학습의 연장이라는 의미가 더 많아졌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니네들 현장학습 가면 좋냐?” “네” “왜?” “현장학습 가는 날은 학교도 안 오고 방과후도 안 해도 되고 학원도 하루 쉴 수 있잖아요.”

아이들은 현장학습 가서 밖에서 노는 것보다 평소에 하던 일상을 안 해도 돼서 좋단다.

학교를 벗어나 수업에 지친 아이들이 좋은 날을 골라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고, 어른이 되어서도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던 ‘소풍’의 의미는 사라지고, 학교를 벗어난 그곳에서조차 학습이 따라 붙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백혜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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