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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음반가게… 추억 하나가 또 사라진다

[경제 기획] 경남서 가장 오래된 마산 ‘명곡사’

46년 역사 뒤로하고 폐업세일 중

기사입력 : 2018-04-17 22:00:00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9월 18일 출시한 ‘러브 유어셀프 승 허’는 판매 13일 만에 120만장을 돌파하며 누적 판매량 158만5834장을 기록했다. 단일앨범 월간 판매기준으로 지난 2001년 11월 발매된 god 4집(144만1209장, 한국음반산업협회) 이후 16년 만에 나온 120만장 돌파기록이다.

16년간 음반시장이 급격히 소멸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음악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고 음원이 쏟아져 나온다. 다만 음악만이 남았고 음반은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음반가게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는 중이다. 지난 3월 말부터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음반가게로 알려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명곡사’가 폐업세일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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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사



◆멀어진 테이프·CD·LP

요즘은 노래를 흘려 듣는다. 인터넷상에서 음성이나 동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발달하면서다. 이 서비스는 전송되는 데이터가 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개울이란 뜻을 담은 스트리밍(streaming)이라고 부르니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노래를 일정기간마다 결제하거나 콘텐츠 사이트에 들어가 듣는다. 이렇다보니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카세트 테이프, CD, LP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선택을 많이 받지 못하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복고풍이 불어 몇몇 음원이 LP판 형태로 특별제작된 적은 있지만 주류흐름은 이미 MP3파일과 스트리밍으로 넘어왔다.

테이프가 뒷면으로 넘어가는 딸깍거리는 소리와 되감기로 지직대는 소음이 거슬릴 일도, 늘어진 테이프를 힘들여 감는 일도, CD의 스크래치로 마음 아파하거나 음악이 튈 일도 없다. 몇 번의 터치로 언제든 원하는 노래만 목록에 담아 들을 수 있으며 세계 각국의 노래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CD, 테이프 애호가들은 음원만으로는 음악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날로그 음향기기와 음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http://cafe.naver.com/analoguser)’의 한 회원은 “음반 재킷사진과 작사가와 작곡가, 연주자가 적힌 가사집을 넘겨보면서 노래를 듣고, 음반을 하나씩 책장에 꽂아놓을 때 그 노래가 비로소 내가 아는 노래가 된 것 같다”며 “지금은 사라진 앨범을 뒤적이며 노래를 고르는 정취를 느끼고 소장하고 싶어 옛 앨범을 찾아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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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사 홍영식 대표



◆문닫는 46살 명곡사

“시원도 하고, 섭섭도 하고 그렇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판 사러왔던 분들이 다 큰 아이들이랑 같이 와서 울먹이더라고요.”

명곡사는 1972년 4월 15일 문을 연 음반판매점이다. 번성했던 창동 한복판에서 꼭 46년간 자리를 지키며 음반판매점의 맥을 이어왔지만 올해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접게 됐다. 도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전국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오래된 음반가게로 알려져 있다. 1980년 1월 1일부터 가게를 인수받아 39년간 명곡사를 운영해온 홍영식(64) 대표는 지난 3월 25일부터 폐점 세일을 내걸고 마지막 판매를 시작했다. CD 1300여 장, 테이프 800여 장, LP 600여 장들이 남은 전부였다. 9일 찾은 10평 남짓한 매장 내부에는 빛바랜 카세트테이프들과 CD, LP 등 음반의 역사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미 많은 음반 애호가들이 다녀가 진열장은 군데군데 빈 상태. 손님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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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카탈로그

김정국(54·창원시 마산합포구 교원동)씨는 “최근에 CD와 LP를 사러 들렀는데, 이제 도내에 음반 살 곳이 거의 없어졌다”며 “지난주만 해도 재즈 명반들이 몇 장 남아 있었는데 그 사이 다 사라져서 놓친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언타이틀과 이소라, 리아, 나훈아, 노영심, 이문세 테이프들이 눈에 띄었다.

황혜영(45·창원시 성산구 신촌동)씨는 “고등학교 때 박남정과 조용필, 소방차 음반을 사려고 왔고 지금까지도 가끔 들렀는데 이렇게 추억이 서린 장소가 사라진다니 너무 아쉽다”며 “좋아하는 곡만 한 테이프에 담아듣고 싶어 17곡 정도 목록을 써서 2000원을 내고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 생각난다” 말했다.

그 즈음이 명곡사 전성기였다. 돌이켜보면 가장 손님이 많았던 때는 LP판에서 CD로 넘어가기 시작한 1989년에서 1994년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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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레코드



홍 대표는 “당시 한국음반협회 마산지부장을 맡아 음반판매점 리스트를 갖고 있었는데 마산지역에만 128곳 있었다”며 “하루에 손님들이 150명 이상 다녀가서 직원을 3명이나 더 둬야했을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2002년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음반 판매가 서서히 줄어 2010년부터는 거의 적자수준이었다”고 말했다.

한 자리에서 있다보니 역사의 목격자가 됐던 날도 있다. 민주항쟁이 격렬하던 1980년대, 남성동파출소 옆에 있었던 탓에 격렬한 시위 대치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셔터를 내려도 최루탄이 가게 내부로 흘러들어오고 학생들이 도피처로 들어왔던 때, 시위가 끝나고 난 뒤면 가게 앞이 신발들로 수북했던 때도 기억한다. 창동에 사람이 밀려왔다 쓸려가는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가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지금까지 변화해 온 날들이 선명하다. 그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 건 개업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써 39권째 쓰고 있는 장부 덕분이다. 매출과 사회적 이슈들을 빼곡히 적은 장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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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명곡사 음반 진열장 곳곳이 빠져나간 음반들로 비어 있다.



홍 대표는 “시대에 흐름에 나만 역행하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LP부터 지금까지 음반가게를 해서 결혼도 하고 가족들을 부양한 나는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손님들이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었던 명곡사라는 음반가게, 그 사장 친절했었는데’ 하고 한 번 떠올려주면 좋을 뿐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남아 있는 음반가게들

▲길벗레코드= 명곡사와 함께 창동에서 34년째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음반판매점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46. 전화번호 055-243-4440.

▲서울레코드= 1975년 문을 연 진주 레코드 가게. 5년 전 한 번 이사를 한 뒤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진주시 남강로 721. 전화번호 055-741-5359.

▲동서레코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202-4. 전화번호 055-241-2466.

▲대명레코드=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1동 62-63. 전화번호 055-243-9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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