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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이산가족 김말선 할머니 “죽기 전에 오빠 소식이라도…”

셋째오빠, 학도병으로 최전방 입대

보초 서다 북에 끌려갔다 들어

기사입력 : 2018-04-26 22:00:00

“친정 엄마가 살아생전 밤마다 달을 보며 ‘달님아, 달님아, 우리 칠봉이 한 번만 보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빌다 돌아가셨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우리 오빠 소식 한 번만 듣게 좀 해주이소.”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자택 앞에서 만난 김말선(73) 씨는 기자의 손을 붙잡은 채 하염없는 눈물로 친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1946년 진해 여좌동에서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자신과 8살 터울인 셋째 오빠 칠봉씨와 어릴 적에 이별했다. 여좌천 인근 주택단지에서 멀지 않은 고등학교를 걸어서 다녔다고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진해고를 졸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셋째 오빠는 학도병으로 최전방에 입대한 뒤 야간에 보초를 서다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군부대가 어디였는지도,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북으로 끌려갔다고만 들었을 뿐 8남매 중 홀로 남은 김씨의 기억도 이제 흐릿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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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선씨가 마산합포구 가포동 자택에서 북한에 있는 셋째 오빠 칠봉(84)씨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김승권 기자/


사진 한 장 지니고 있지 않은 김씨가 붙잡고 있는 오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7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씨를 뺀 7남매가 상여를 따라가던 기억, 마당 닭장에서 기르던 닭 한 마리가 시름시름 앓자 오빠가 살리겠답시고 닭의 배를 갈라 숯가루를 집어넣은 뒤 실로 꿰맸고, 이내 닭은 죽어버렸다는 기억이 전부다. 오빠와 함께한 어린 시절을 말하며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김씨는 부모와 남매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버텨온 지난 세월이 서러운지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셋째 오빠가 아직 살아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으로 버텨왔다는 김씨는 매번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11년 만에 열리는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보고 싶은 거야 말로 못하지.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이제는 오빠 얼굴마저도 기억이 안 나서 볼 면목도 없어. 살아 있으면 제발 소식이라도 한 번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라야지….”

한참 말을 잇지 못한 김씨는 ‘좋은 소식 들려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셔야 한다’는 기자의 마지막 인사에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떨궜다.

김씨의 바람처럼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산가족 상봉의 길이 다시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크다. 무엇보다 남북 분단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고령이 돼 버린 생존자들이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감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경남지역에 거주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는 이들은 1360명이다. 전국적으로는 5만7920명에 달한다. 하지만 1988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3만1531명으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청자의 절반이 넘는 7만361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90% 이상은 70세 이상의 고령이었다.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의 연령대도 86.3%가 70세 이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추세다.

통일부와 함께 이산가족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민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됨에 따라 이산가족 신청자들이 기존에 등록한 연락처나 주소 등을 업데이트해달라는 민원이 늘고 있다고 적십자사는 설명했다. 적십자사 남북교류팀 관계자는 “최근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 기존에 등록된 인적사항 중 변경된 것을 업데이트해달라는 민원이 늘어 적십자사에서도 민원에 응대할 직원 수를 늘리고 있다”면서도 “아직 정상회담 전이고, 이상가족 상봉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향이 결정되지 않아 이와 관련해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도영진·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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