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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선거여론조사 보도해야 하나- 허승도(논설실장)

기사입력 : 2018-05-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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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이 6·13 지방선거 보도에서 하지 말자고 강조하는 것이 ‘오차범위 내 순위 매기기 여론조사 보도’이다. 여론조사의 기법이 발달하고 다양해졌지만 올바른 정보제공을 위해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기저에는 여론조사 보도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예비후보들이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심지어 언론사를 고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과연 선거여론조사를 어느 선까지 믿어야 할까?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CNN 등 주요 언론사들이 여론조사를 근거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의 압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공화당 트럼프가 당선됐다. 폭스뉴스 등 일부 언론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사 여론조사가 모두 빗나간 것이다. 미국여론조사연합회는 이와 관련, 여론조사가 완전히 틀렸다고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다.

이처럼 선거여론조사가 틀리는 이유는 응답률이 낮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응답률이 10%라는 것은 응답하지 않은 90%의 의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전체 유권자의 뜻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70년대 응답률이 80%가 넘었지만 1997년 36%, 2014년에 8%로 떨어지면서 선거예측조사가 틀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된 1995년에는 40% 수준이었던 응답률이 최근에는 5% 안팎으로 낮아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는 대부분의 여론조사 응답률이 4~6% 수준이다. 2% 이하도 있다. 이와 함께 여론조사에 대한 공신력을 의심하게 하는 것은 ‘여론조사 질문’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E. J. 디오니 및 토마스만 연구원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의심받게 만드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라고 꼽았다. 어느 한쪽이 유리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교묘히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기초자치단체장 적합도 여론조사를 하면서 “지방자치행정 대상을 수상한 000시장이 00시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식이다.

표본추출에도 문제점이 있다. 국내 선거여론조사에서는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할 때 대부분 성별, 연령, 지역별 인구 비례에 맞게 표본을 강제로 할당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경우 강제 할당된 표본을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지만 일부 특정 계층이 여론조사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여론조사기관에서 특정 지역에서 선거여론조사를 시작하면 후보측에서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하여 SNS나 문자 메신지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 내용을 알리고 응답해 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선거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대부분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아 이 빈자리를 특정후보 지지자들로 채워지면서 여론조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이 연령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여론조사가 부정확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선거 때마다 청년층과 장·노년층의 표심이 달랐기 때문에 연령대별로 표본을 강제 할당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화로 여론조사를 할 경우, 노년층 응답자들이 장년층으로, 청년층 응답자가 장년층인 것으로 나이를 속여도 알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여론조사의 실상이 이러한데도 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에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해도 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선거여론조사 보도가 올바른 선거정보를 주는 것인지, 여론 조작에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으로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드는 데 기여한 괴벨스가 “여론은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선전을 통해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도 괴벨스와 같이 미디어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허승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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