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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심장이 뛰는 직장- 이상규(정치부장)

기사입력 : 2018-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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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 젊은 시절은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필자도 그랬다. 20대 초반 한 친구는 장래 꿈이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빌딩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그의 꿈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 인상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푸른 청춘의 꿈이란 게 고작 그런 것인가’라고 속으로 생각한 적 있다. 그런데 이후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생활인으로 살면서 제 힘으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것마저 장난이 아니라는 걸 체험하고 나서 그땐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꿈이 이뤄졌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회상하면 그는 세상 물정을 일찍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을 못 구해 걱정이 많지만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군사정권임에도 나름 경제는 잘 돌아가 구직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 해서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여러 곳에 타진을 했고, 직장을 잡고 난 뒤에도 보다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직장을 옮기는 사례도 많았다.

그럼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인가. 생활인으로 무엇보다 대기업처럼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 복지 혜택이 많은 곳을 꼽을 수 있겠다. 다음으로 직장 문화가 민주적이며 상하 소통이 잘 되는 곳.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직장 분위기가 가족적인 회사를 상정해 볼 수 있겠다.

요즘은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퇴근 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여유를 갖는 ‘저녁이 있는 삶’도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공무원의 주가가 더 올라가고 있다.

흔히 직장은 ‘자아 실현의 장’이라고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음으로써 단순히 생계수단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는 곳이라는 뜻이다. 직장은 생활인의 삶의 터전이지만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자면 ‘매일 심장이 뛰는 곳’이 직장이 되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직장이 잘 있던가. 젊은이들이 가장 들어가길 선호하는 대기업조차 어떤 곳은 총수 일가의 갑질 온상으로 드러났고, 정시 출퇴근이 보장된 공직사회도 실제로 야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직장은 ‘매일 심장이 뛰는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뛰던 심장도 멎게 되는 곳’에 더 가깝다. 먹고사는 문제가 그렇듯 직장의 적나라한 현실은 여전히 ‘생활’보다 ‘생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직장이든 적당한 수의 ‘또라이’가 존재한다. 이름하여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현재 근무하는 부서에 그런 사람이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거기도 같은 수의 또라이가 있기 마련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가장 큰 이유로 직장 내 인간관계를 든다. 그런 측면에서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나는 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하다. 또한 좋은 직장이란 급여, 복지, 이미지 등 드러난 객관적 조건보다 인생의 스승과 평생의 친구도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좋은 직장 타령을 하는 건 사치인지 모른다. 어찌 됐건 경제가 빨리 살아나 일자리가 늘어 젊은 친구들이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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