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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경남 마이스, 이제는 도약할 때 (4) 스칸디나비아 마이스의 중심, 밀뫼

‘눈물의 도시’가 친환경·IT 만나 ‘마이스의 도시’로

기사입력 : 2018-06-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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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스웨덴 말뫼에 있는 ‘말뫼 라이브’에서 세계 청정에너지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열린 제3차 미션이노베이션 장관회의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기자회견 후 각국 대표들은 보트로 외레순 해협을 건너 청정에너지 장관회의가 열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1월 마산만을 바라보고 서 있던 성동산업 (성동조선해양) 마산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헐값에 팔려 루마니아로 떠났다. 조선산업의 전성기에 사들였던 700t짜리 크레인이 10년을 서 있지 못하고 주황색 무릎을 꿇자 많은 이들이 ‘말뫼의 눈물’을 떠올렸고, ‘마산의 눈물’에 낙담했다. ‘말뫼의 눈물’은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했던 말뫼 코쿰스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지난 2002년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려가자, 시민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며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된 데서 비롯됐다. 이후 ‘말뫼의 눈물’은 쇠퇴한 도시의 아픔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됐다.

‘마산의 눈물’이 흐를 즈음, 말뫼는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정부가 통영을 최대규모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하자 통영이 ‘한국판 말뫼’로 일컬어지며 도시재생에 성공한 말뫼를 벤치마킹해 통영을 되살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말뫼는 짧은 시간 동안 친환경·IT 산업으로 도시를 재편하며 쇠퇴의 아이콘에서 재생의 아이콘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말뫼가 웃음을 되찾는 데에는 친환경·IT의 역할이 컸지만 또다른 노력도 있었다. 마이스 산업이다. 지난 5월 말 찾은 말뫼는 마이스 산업을 강화해 도시가 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여러 회의·전시를 개최하며 친환경·혁신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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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현대중공업에 팔린 코쿰스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의 해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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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월 성동산업 마산조선소에서 700t 골리앗 크레인이 철거되는 모습./경남신문DB/

◆각국 대표·친환경 에너지 전문가들 모여들다

“방이 하나도 없어요, 저기 이름표 목에 건 사람들 보이시죠?”

지난 5월 23일 스웨덴 말뫼에서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의 객실이 모두 동났다. 세계 22개국·유럽연합이 청정에너지 혁신을 가속화를 목표로 개최하는 3차 미션이노베이션 장관회의(MI3)를 비롯해 여러 친환경 에너지 관련 행사들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장관급 대표들과 에너지 관련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든 덕분이다. 말뫼에서의 MI3가 끝나면 말뫼와 외레순 다리로 이어져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9차 청정에너지 장관회의(CEM9)가 개최되는 등 청정에너지 관련한 큰 국제포럼이 잇달아 열리게 되자, 두 도시는 21일부터 한 주 내내 진행되는 ‘노르딕 청정에너지 주간’을 공동으로 열어 다양한 청정에너지 이벤트들을 만들었다. 코펜하겐에서만 열리는 행사로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에너지 분야에서 말뫼가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하고, 그간 유로비전 등 다년간 대규모 콘퍼런스를 잘 치러냈던 이력이 있어 공동개최가 가능했다. 크지 않은 말뫼 시내 곳곳에 행사장소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말뫼 컨벤션뷰로 프로젝트 매니저 카밀라씨는 “이번 행사의 경우 중앙정부가 유치해 운영만 말뫼 관광청에서 맡아 하고 있지만, 정부가 이렇게 중요한 회의들을 믿고 맡긴다는 것은 말뫼에서 유로비전 등 굵직한 콘퍼런스를 치러낸 이력을 갖고 있어 가능한 것이다”며 “미션이노베이션과 같은 회의를 치러냄으로써 말뫼는 친환경·IT·스타트업 중심의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다지고, 세계적인 지명도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미션이노베이션과 같은 주요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말뫼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수준 높은 연구와 흥미로운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리면서 시민들 또한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등록절차 없이 시민들 누구나 현장에서 행사의 일부가 돼 참여하고 배우면서 일상에 컨벤션이 녹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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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주거단지 뒤로 보이는 ‘터닝 토르소’. 코쿰스 크레인이 사라진 자리에 선 이 빌딩 꼭대기에서도 회의가 열린다.

◆친환경·IT중심 도시로 거듭난 말뫼

북유럽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햇살이 따가운 지난 5월 25일 오후, 말뫼 베스트라 함넨 지역 바닷가에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수영하고, 햇빛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 너머로 독특하고 감각적인 북유럽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곳은 중공업 단지를 친환경 거주지로 바꾼 시범지구 베스트라 함넨 ‘bo01’이다. 흉물스러운 폐공장터였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이 지역은 한국 조선업의 성장으로 1986년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후 지방정부와 여러 지역 전문가들이 6개월간 머리를 맞댄 결과 ‘친환경 주거지 건설’, ‘대학 유치’를 도시부활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탄생한 곳이다. 여기서는 필요한 에너지 모두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주거지 건물 뒤로는 역동적인 형태의 흰 건물이 홀로 솟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코쿰스 크레인이 떠난 자리에 선 54층짜리 주상복합빌딩 ‘터닝 토르소’다. 190m 높이를 자랑하며 말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이 건물 또한 지열과 태양광을 사용해 냉난방을 해결하는 친환경 건축물이다. 1998년 터닝 토르소 옆 코쿰스 부지 위에는 말뫼 대학이 섰고, 2002년에는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창업보육센터도 개소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혁신적인 시도를 인정받으며 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발걸음을 뗀 덕에 말뫼는 단숨에 친환경에너지·도시재생 부문의 선두자로 부상하며 OECD가 발표한 세계에서 4번째로 혁신적인 도시가 됐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첨단산업이 발달하자 말뫼에는 조선업 전성기 때의 2배가 넘는 일자리가 생겼고, 인구 절반이 35세 미만인 ‘젊은 도시’로 거듭났다. 조선업·제조업 중심이었던 말뫼는 현재 친환경·IT도시로 전체 산업구조에서 기업지원·서비스 산업을 주축으로 삼는 도시가 됐다. 1994년 1만7000여명이었던 제조업 근로자수는 2016년 절반가량인 9000명 정도로 급감했다. 말뫼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로 스웨덴 전체에서 제조업이 갖는 비중 12%의 절반밖에 되질 않는다.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직접 보러 오려는 사람들 덕에 관광인구도 늘어났으며, 관련 회의 개최도 증가했다.

말뫼시는 말뫼의 신산업, 말뫼시 자체의 지속가능한 도시 구조가 가진 특성이 마이스산업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친환경·IT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말뫼에 정보를 얻기 위한 방문·회의가 늘어나고, 그 결과 정보와 전문가를 말뫼로 끌어들이는 일이 다시 해당 산업들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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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만 도시 마이스로 팽창하다

‘스칸디나비아 마이스 수도’라는 슬로건을 내건 말뫼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50인 이상 규모 미팅·회의들을 매년 1200건씩 열고 있다. 올해 가을에 북유럽 국가들의 마이스 박람회인 ‘노르딕 마이스 서밋’도 이곳 말뫼에서 열린다. 마산지역의 인구와 비슷한 인구 30만 도시에서, 친환경도시로의 변모 이외에 어떤 것들이 말뫼에서의 마이스를 흥하게 했을까. 무엇보다 유럽 최장인 7.8km 길이의 외레순 대교의 개통이 말뫼의 운명을 바꿨다. 2000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연결되는 외레순대교가 개통하면서 코펜하겐과 덴마크는 한 경제권으로 묶이게 됐고 경제·인적교류가 활발해졌다. 특히 말뫼는 말뫼공항에다 세계 허브공항인 코펜하겐 공항까지 2개의 공항을 쓰게 되면서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다. 30분 사이에 두 도시를 오가는 것이 가능해 말뫼는 ‘하나의 목적지, 두 개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꾸준히 전시컨벤션시설을 확충하면서 더 큰 규모의 이벤트도 유치할 여력이 생겼다. 터닝 토르소 꼭대기에 있는 특별한 회의장소부터에서 격식있는 회의시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컨벤션시설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호텔도 말뫼 중심부에만 5000객실이 있다. 인프라뿐 아니라 콘텐츠 측면에서도 내실을 갖춰 말뫼대학뿐 아니라 20분 거리에 있는 전통있는 룬드대학교, 세계해사대학 등 대학들이 생기면서 학술대회 등도 자연스레 증가했다. 마이스 산업이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데다 주요 학회는 교수들이 회장을 맡고 있다 보니 룬드대의 저명한 교수들의 영향력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말뫼시는 마이스업계 경쟁이 치열한 때 접근성·지속가능성·개발 세 가지를 바탕으로 말뫼 마이스 행사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말뫼컨벤션뷰로 헤드 매니저 요한 멘소씨는 “말뫼에는 마이스 행사 유치를 위한 정부 지원금이 없어 아예 비딩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말뫼가 가진 뚜렷한 세 가지 모토를 바탕으로 해외 마이스 콘퍼런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트렌드를 살피고, 생존 전략을 구축해나갈 것이다”며 “잘하는 것만 지속적으로 하지 않고, 그간 말뫼가 약점으로 꼽혔던 분야의 전시·컨벤션에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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