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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산동네 홀몸 어르신 여름나기

환기 안되는 어둑한 방엔 TV 불빛만

연신 땀 닦으며 “아이고 덥다” 반복

기사입력 : 2018-07-15 22:00:00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14일 오후 1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의 산동네 골목길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담벼락을 따라 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에는 바람 한 점 지나가지 않았고, 오래된 집들의 작은 문 앞에는 신발들만 한두 짝 놓여 있을 뿐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구부정한 허리로 벽을 짚으면서 골목길을 오르는 박모(80) 할머니와 마주친 것은 이곳에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할머니는 “더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너무 갑갑해서 잠깐 나와 봤다”며 연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할머니를 따라 작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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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특보가 내린 지난 14일 낮 홀몸 어르신인 박모(80) 할머니가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해 더위를 나고 있다.


홀몸 어르신인 할머니는 고양이 ‘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는 TV가 소리 없이 화면만 내보내고 있었고, 바깥과는 또 다른 무게의 열기가 가득했다. 할머니는 방 앞에 놓인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 내며 작은 하늘색 선풍기를 켜고 앉았다.

“우리 같은 노인들은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 겨울은 전기장판이 있으면 견딜 만한데, 여름에는 선풍기를 틀어놔도 집이 갑갑하고 지내기가 아주 불편하제. 집도 밖도, 낮도 밤도 다 힘든 계절이라.”

할머니는 5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수리공이었던 할아버지가 벽걸이 선풍기도 달아놨지만 할머니는 작동법을 몰라서 몇 년째 오래된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보낸다. 더운 날씨에 선풍기 한 대 더 놓으시라고 하니 손사래를 친다.

“정해진 명이 있어서 이래 살고 있는 거지, 선풍기 하나면 내 혼자 나기엔 충분하다. 정부에서 돈(연금)이 나와서 선풍기도 틀 수 있고 고맙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공짜로 준다고 너무 많이 쓰면 안돼제. 내가 자식이 없어도 통장이 가끔 전화 걸어서 안부도 물어봐 주니 이래 혼자 죽어도 누가 거둬 주겠구나 싶고.”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땀줄기를 닦으며 중간중간 “아이고 덥다, 아이고 덥다”를 무심결에 반복했다. 주방 겸 거실에 창문이 하나 있었지만 환기가 되기엔 턱없이 작았고, 단열이 안 되는 산동네 작은 집은 태양의 열기가 그대로 통과되는 듯 사방이 후끈거렸다.

할머니는 경로당이나 무더위쉼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만약 인근에 있다고 해도 오가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0여m밖에 안 되지만, 다섯 번을 쉬고 걷고를 반복해야 가능한 가파른 산동네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오늘이 제일 더운 것 같다”는 할머니는 “이 동네 옆으로 다 산동네고 나보다 힘든 노인들도 많은데, 올여름 수월케 좀 지나가면 좋겠다”며 기자를 배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남에는 박 할머니와 같은 65세 홀몸 어르신이 11만1534명(2017년 기준) 있다. 홀몸 어르신은 2013년 9만9883명, 2014년 10만3471명, 2016년 10만6740명 등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4명 중 1명은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다.

글·사진=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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