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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투데이] 전문 예술인 키우는 안원철 부산예술대학교 총장

“전통문화 뿌리 위에 민족예술 세계화 실현 온 힘”

실기 위주 교과 운영으로 ‘현장 인재’ 양성

기사입력 : 2018-07-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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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철 부산예술대학교 총장


“부산·경남지역의 유일한 예술특성화대학으로, 성·경·신(誠敬信) 실천도덕을 바탕으로 전문 예술인 양성에 자부심을 갖고 교육중입니다.”

부산 황령산 자락 문현램프 근처에 있는 사학 명문 부산예술대학교 설립자 2세인 안원철 총장을 만났다. 부산예술대는 지난 1994년 설립자 안관성 이사장의 교훈을 받들어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정기를 함양하고, 전통문화의 뿌리 위에 예술의 창조 정신과 세계주의를 조화시켜 미래 민족예술의 세계화, 보편화를 실현시키는 전문 예술인을 양성하는 곳이다.

학교법인 원곡학원(圓谷學園)은 1994년 부산예술학교로 문을 연 뒤, 2003년 지금의 부산예술대학교로 변경했는데 경남·부산지역에 유일한 예술 특성화 대학이다. 실기 위주의 교과과정 운영, 졸업과 동시에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특별 교육으로 예술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안 총장의 할아버지는 일제 치하에 북한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가산을 독립운동에 다 바치고 일본군한테 잡혀 광복 6개월 전에 옥사했다. 안 총장은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힘없고 못 배워서 나라를 빼앗겼다,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 후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이 아주 강하신 분이었다고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안관성 이사장은 부산 국제시장의 건빵장수에서 영감을 얻어 일본으로 건너가 건빵 만드는 기계를 보고 연구를 거듭해 건빵기계를 대량생산했다. 돈을 벌면 농장이나 임야, 전답을 많이 샀다. 건빵이나 제과제빵 재료인 밀을 심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부산예술대 부지도 그때(1950년대 초) 구입한 것이다. 사업성공으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매우 검소했다.

안 총장은 “아버지가 저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엄하게 가르쳤다. 어릴 적에는 우리집이 남들과 비교해 못사는 집으로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997년 IMF 사태로 위기에 처하자 대학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대학경영을 책임지고 있던 모친으로부터 대학을 맡아 위기를 극복하라는 특명을 받고는, 컴퓨터학원업을 정리하고 대학에 발을 들여 정상화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부산예술대를 반석 위에 올렸다. 그러나 또다시 IMF 못지않은 고비가 찾아왔다. 학령아동 감소로 정원을 채우기 힘들게 됐다. 대학들은 정부의 구조조정 및 통폐합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 총장은 “우리 학생들은 취업을 목적으로 오지 않는다. 영화배우, 탤런트, 가수 등 연예인을 하기 위해 온 학생들이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예술대를 일반대학과 똑같이 입학률과 취업률 등을 적용해 평가하고 있다”면서 “대학 구조조정은 절대로 관에서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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