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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 여섯 청년의 창업실험 ‘따로 또 같이’

[경제 기획] 지원 없는 청년창업 꿈꾸는 ‘스페이스055’

기사입력 : 2018-07-18 07:00:00


바야흐로 ‘창업 권하는 사회’다. 청년들을 수용할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니 창업으로 내몬다. 나라에서 돈 줄게, 한국의 마크 저커버그를 꿈 꿔봐!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창업을 했다 그만둔 청년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폐업을 신고한 20~30대 개인 및 법인사업자는 23만9806명. 20만8870명이었던 2015년 폐업 신고자에 비해 15%가량 증가했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믿고 대출을 받았다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들, 지원금을 노리는 브로커의 등장 등 창업지원의 어두운 이면도 서서히 사회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청년창업, 과연 해답일까? 여기에 반기를 드는 청년들이 있어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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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창업자들의 공유오피스 ‘스페이스055’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노상태, 박민혁, 김재희, 김기종, 김경수, 강준영 씨. /스페이스055/

▲‘스페이스055’의 구심(球心)

진주 중안동의 아담한 2층 건물. 1층 커피숍을 지나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오늘 소개할 여섯 청년들의 일터가 나온다. 명패도 없는 60평 남짓의 어수선한 작업실이지만 치열하지 않으면 배겨내기가 힘든 공간이다. 이곳은 ‘스페이스055’. ‘스페이스’는 함께하는 ‘공간’을 의미하고, ‘055’는 경남 지역번호에서 따왔다.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이 공간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은 김재희(42)씨. 김 씨는 이미 30대 초반부터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사무국장,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홍보미디어 팀장 등을 맡으며 영상 콘텐츠 제작에 있어 탁월한 안목과 실력을 갖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로 드론,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상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했고, 지역 뮤지션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담은 ‘오프스테이지 라이브(Offstage Live)’ 작업으로 이름을 알려 삼성에서 협업을 제안, 일약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2015년부터 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은 ‘디스커버 진주(Discover Jinju)’, 2013년부터 진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짧은 글로 풀어낸 ‘휴먼스 오브 진주(Humans of Jinju)’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국내외에 진주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스페이스055’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알게 된 지역 청년들이 김씨 주변에 모여드는 ‘사랑채’로 출발했다. 사진과 영상에 능한 젊은이들이 모이다보니, ‘비즈니스’라고 할 만한 일들이 제발로 그들을 찾아왔다. 지난 2~3년 동안 창원환경영화제, 진주문화예술회관 옥상 여름축제 등을 기획했고, MBC경남 다큐 제작에 참여하면서 협업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각자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1인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

▲누가 누가 있나

‘스페이스055’의 구성원은 김씨 외에 음향작업을 하는 강준영, 사진·영상작업을 하는 김기종, 사진작업을 하는 노상태, 파워블로거 박민혁, 모션그래퍼 김경수씨다.

먼저 강준영(32)씨는 2015년 ‘준플래닛’을 창업했다. 오디오 사운드레코딩, 신시사이저, 편곡 등 다양한 음향작업을 하고 있다. 녹음부터 후처리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지역 뮤지션과 밴드의 음악을 레코딩하기도 하고 CF 배경음악, 영화 사운드레코딩 작업을 한다.

김기종(38)씨는 2016년부터 ‘에이치앤 팩토리(H&Factory)’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영상, 행사기획, 행사진행 및 기록 작업을 한다. 최근 MBC컨벤션센터와 웨딩촬영 메인계약을 체결했고, 진주문화예술회관 공연 연간기록 사업도 맡았다.

노상태(29)씨는 2015년부터 ‘르블랑’을 설립해 사진 작업을 해왔다. 패션 제품 사진, 카달로그, 룩북 작업을 주로 한다. ‘에이치앤 팩토리(H&Factory)’와 협력 작업을 다수 하고 있다.

박민혁(27)씨는 파워 블로거이자 인플루언서다.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을 협찬받아 리뷰를 작성한다. 2015년부터 시작한 박씨의 블로그 ‘혁스 라이프(HYUK‘s LIFE)’는 토털 조회수가 300만에 달한다.

김경수(36)씨는 ‘다라이 필름’을 설립, 영상 디자인과 CG작업을 한다. 진주 서경방송에서 모션그래퍼로 7년 동안 근무하고 창업을 위해 얼마 전 사직했다. CG, 영상편집과 촬영, 데이터 매니저, 자료변환, 수집, 가편집 등의 일을 한다.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들의 책상은 ‘1인 기업’에 특화된 독특한 모습으로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강준영씨의 책상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최신 음향기기들이, 박민혁씨의 책상에는 협찬받은 미개봉 의류 제품들이 즐비한 식이다. 이들은 무심한 듯 공간을 점유하면서 독립된 일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 ‘스페이스055’는 일종의 공유 오피스다.

하지만 그저 공간을 공유하기만 한다면 ‘인큐베이팅’을 논하기는 어려울 터.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주고 받고 있어요. 가르치고 배우기도 하고요. 궁극적으로는 여섯 명 모두가 음향, 사진, 영상, 블로그 등 문화 콘텐츠 전반의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순식간에 트렌드가 바뀌는 문화 콘텐츠는 바로바로 습득하고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거죠. 때문에 서로 동료이지만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영상 산업은 서울·경기가 95%, 부산이 3%, 나머지 2% 중 경남이 1%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방송국 수요까지 모두 합친 것으로, 경남에서 다양한 계층에 의한 다양한 볼거리 제작이 이뤄지는 것은 요원한 일인 듯 보인다. 때문에 ‘스페이스055’는 영상을 중심으로 한 지역 청년창업자들의 역할도 염두에 두고 있다.

“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틈틈히 지역상권을 중심으로 맛집투어를 벌이고 아카이브 식으로 사진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거든요. 이것도 지역을 소재로 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이죠.”

▲무엇을 지양하는가

사실 지금까지 ‘스페이스055’를 거쳐간 청년들이 꽤 있었다. ‘창업’을 명분으로 앱을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거나 영상을 만든 젊은이들. 이들은 정부 지원을 받고 성공한 사업가처럼 돌아다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고 떠났다. 그리고 이제 여섯 명이 남았다.

이 허탈한 일을 지켜봐 온 이들은 청년창업의 현 실태에 대해 도전적이고 신랄했다. “정부과제를 수행하는 기업은 망하기 직전인 회사라는 말이 있죠. 관제(官製)는 비즈니스와 대척점에 있어요. 정부가 지원하는데 경쟁력이 어떻게 발휘될까요? 특히 지역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이미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지원까지 받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지역 청년창업자들에게 자생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지원을 받기 위해 없는 아이템을 억지로 개발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어요. 흔히 창업보육센터 등을 중심으로 교수나 공무원이 사업모델을 짜죠. 그러나 실상은 실적 쌓고, 지원금 집행하는 행정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지금 청년창업은 ‘소용’이 있어야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 있어요. 이것은 한마디로 ‘복지’죠. 돈이 되어야 하고 성과도 있어야 하며 학습도 이뤄져야 해요. 이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청년창업의 핵심입니다.”

이들은 관(官)이 주도하는 ‘복지’에 지나지 않는 청년창업 실태에 ‘스페이스055’가 대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물론 자기증명을 해야 합니다. 하고 싶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거기에 저희가 있고 싶어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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