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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흔적을 찾아] 경북 고령·전북 남원 가야고분군 탐방

주산 능선 따라 대가야의 찬란했던 역사 우뚝우뚝 솟았다

기사입력 : 2018-07-30 22:00:00

‘잊혀진 왕국’ 찬란한 500년의 고대 가야 역사가 가야인들이 남긴 유적 유물을 통해 깨어나고 있다. 그들의 무덤인 가야고분군은 소멸한 가야 문명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인류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다. 가야 고분군 소재 시·군과 경남도, 문화재청은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유산등재 추진 고분군 가운데 경남지역의 고분군을 벗어나 경북 고령과 전북 남원의 고분군을 찾는 탐방길에 올랐다.

지난 17일 아침 일찍 창원에서 100㎞ 정도 떨어진 경북 고령으로 향했다. 고령군 지산동고분군을 둘러본 뒤 전북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돌아보는 코스를 잡았다. 경남이 아닌 다른 지역의 고분군도 하루 정도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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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경./드론 촬영= 이솔희VJ/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령군은 경북의 남서쪽에 위치해 경남과 붙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와 접해 있다. 이곳 고령의 지산동고분군(사적 제79호)은 서기 400년경부터 562년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고령의 진산인 주산(主山: 310m)의 능선을 따라 늘어선 700여 기의 크고 작은 봉토분은 가야지역 최대 규모의 고분군으로 탁월한 역사적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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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대가야왕릉전시관 옆 탐방로를 따라 주산에 올랐다. 길을 낸 뒤 아직 정비가 끝나지 않은 흙길을 따라 몇 분 걸었다. 초입부에서부터 올망졸망한 고분군이 잇따라 눈에 들어온다. 표지석이 없다면 이 정도 규모의 고분은 일반 무덤과 구별이 어려울 것 같다. 고분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제306호분부터 302호분, 301호분, 299호분 등 일련번호가 앞당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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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44호분(왼쪽 첫 번째)과 45호분 등 거대 고분군들이 우뚝 솟아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 가파른 길을 따라 쉼 없이 오르기를 20여분. 무더위에 지쳐갈 때쯤 중턱에 자리한 한 그루의 소나무와 벤치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한 쉼터를 내어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인적이 없던 곳에 고분 복원을 위해 작업을 하다 휴식을 취하는 인부들의 목소리가 고요함을 깨웠다. “야야. 숨은 쉬지나. 니 여서 죽어 조상 옆에 묻히면 호상이다.”

이 소나무를 넘어서니 거대한 고분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으로 알려진 44호분과 45호분이 보인다. 직경 30~40m 규모의 대형분 5기가 능선을 따라 거대하게 솟아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 고분은 가장 위에 있어 1~5호 고분으로 불린다. 내려오는 길에는 대가야읍 전경을 눈에 담고, 고대 가야국을 걷듯 느긋하게 산책하니 2시간 정도 흘렀다. 산에서 내려와 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으로 향했다. 그 속에서 당시의 무덤 축조 방식을 살펴보고, 순장자들이 발견된 모습과 그 의미를 다시 되짚어본다. 44호분은 무덤의 주인공인 왕을 비롯해 시녀와 무사, 백성 등 40명 이상이 한꺼번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된다고 믿은 대가야인의 내세사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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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 내부. 중앙 가장 큰 돌방은 주인공인 왕이 묻힌 으뜸돌방이다.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지산동고분군에서 85㎞ 정도 떨어진 곳. 전북 남원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있다. 남원시는 전북에서도 남동부에 위치해 동쪽으로 함양군과 맞닿아 있다. 이곳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은 유곡리 성내마을과 아영면 두락리마을 사이 산을 등지고 동쪽으로 길쭉한 언덕 일대를 차지한다. 가야세력의 지배자 무덤군으로 추정되며, 40여 기의 대형 고분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5~6세기 남원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가야와 백제, 그 주변 세력과의 역학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소재지로 향하니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 성내마을회관에 도착했다. 회관 앞에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우선등재 대상선정’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전방 10m 앞에 고분군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마을 안 경사진 골목을 오르며 주택 몇 채를 지나자 고사리밭 너머로 홀로 우뚝 서 있는 32호분이 보인다. 또 우측 편에도 고분임을 알리는 비석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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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곡리 성내마을 주민 전강용(79)씨의 도움을 받아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을 찾고 있다.


“여기 32호분만 고분 같지, 다른 고분은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워.” 마을회관 옆 정자에 쉬고 있던 한 주민이 취재진을 따라와 말을 건넨다. 손수 고분군을 안내해주겠다며 취재진에게 따라오라고 손짓도 한다. 그를 따라 잡풀이 우거진 풀밭 구석구석에서 고분을 찾아본다. 제18호분, 17호분, 19호분, 31호분 등 고분마다 안내판은 보이지만, 모두 형상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주민 전강용(79)씨는 “여기 주변이 다 마을 밭으로 써왔다. 고분 주변에 있는 것들은 고사리 반, 잡풀 반이다. 32호분은 발굴조사를 하고 원형을 복원했지만 다른 고분은 발굴조사나 정비가 다 안 됐다”며 “내년에 다 정비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씨에게 고분군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지를 묻자, “여기저기 다 하는 이야기다. 주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정비되는지 지켜볼 뿐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남원시 관계자로부터는 “올해 3월 전라북도 지정 기념물에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며 “그간 지방비에만 의존해 관리에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국비를 지원받아 발굴조사나 정비사업을 탄력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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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유곡리 성내마을 고분군. 전경에 지난 2013년 발굴 조사된 이후 2014년 10월 원형복원 된 32호분이 보인다./드론촬영= 이솔희 VJ/


한편 경남도는 지난 5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회의를 열어 유산 범위를 확대했다. 이에 세계유산등재 추진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과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고분군 등 기존 3개에서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모두 7개로 늘었다. 가야국의 주 무대였던 경남을 중심으로 영호남에 넓게 분포해 있는 고분군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주요 과제로 지목되는 가운데, 향후 등재추진단에 전북 등 추가 고분군 소재지 지자체가 참여할 경우 세계유산 등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는 2021년 세계유산 확정이 목표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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