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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독 상주대표부-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 2018-08-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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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판문점 선언에 기초해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곧 출범할 예정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독일 통일 전문가들과 동서독 상주대표부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독일은 통일에 앞서 동서독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두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하나는 동서독 기본조약이고, 다른 하나는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의정서다.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은 동독에 대한 서독 정부의 정책적 전환의 산물이다. 서독은 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화와 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동서독 기본조약 8조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명명하였고, 그 합의에 따라 1974년 동서독의 수도에 상주대표부가 설치될 수 있었다.

독일 전문가들은 상주대표부는 통일이 될 때까지 동서독 관계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과거 동서독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상징적 의미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남북관계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이번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매우 중대한 진전이다.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 인적 물적 교류를 본격화했던 독일의 경우 각기 수도에 설치된 상주대표부는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외교관계에 있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존재하듯이 정식 외교관계 수립 이전의 상주대표부나 연락사무소는 교류 확대에 따른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는 주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통일 전 동서독의 경우 한 해 300만~4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오갔고, 교류에 따른 절차들을 상주대표부와 해결해 나갔음을 상기해 보자. 향후 남북 간 교류확대에 따른 우리 국민들이 의논하고 기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이는 연락사무소장의 급이나 대북제재 문제 등 정치적 문제는 차치하고 그 자체로서 우리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실질적 측면이다. 남과 북은 공동으로 마련된 연락사무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 기능을 부여하고 보장해야 한다. 동서독 상주대표부의 경우는 대화 통로, 주민 편의제공 등 기본적인 기능뿐 아니라 각기 상대방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기능을 부여했다. 그리고 청소년·스포츠·학술 및 문화 교류 등 동서독 관계 확대 발전에 따른 새로운 업무들 창출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동서독 간 인도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상주 대표부는 협의 창구로서의 기능을 했다. 물론 동서독의 경우도 그 이상의 레벨이나 중대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중앙정부 및 각기 협상 파트가 직접 협상에 임했다. 따라서 우리 연락사무소의 경우도 실제 남북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소통과 협의의 창구로서 협력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남북관계의 확대 발전에 대비하여 상주대표부와 같은 역할의 확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전 동베를린 상주 대표부 대표였던 한 인사는 동서독 기본조약과 상주대표부 운영에 대해 의미심장한 평가를 한 바 있다. 그는 동서독 기본조약과 상주대표부는 독일이 통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국내외 정치적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독일 문제를 관리하는 데 기여했다고 언급했다. 우리의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도 한반도 상황 관리와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있어 중대한 진전이다. 우리는 독일이 해온 두 가지의 제도적 장치와 같이 지난 판문점 선언과 앞으로 있을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통해 남북관계의 ‘되돌릴 수 없는’ 제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당면한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선순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선 독일인사의 언급처럼 우리가 스스로 통일을 할 수 있는 대내외적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남북관계의 상황은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관리되고 발전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지금 새로 태어났고 첫발을 뗀다. 우리 스스로가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임을 인식하자.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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