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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新 팔도유람] 가을에 떠나는 경기지역 성지순례

아픔의 길에서 나를 돌아보다

기사입력 : 2018-09-14 07:00:00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끝나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독 더웠던 탓인지 가을 일교차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선한 날씨로 인해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곧 있을 추석으로 인해 발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다. 하루 정도 짧은 여행, 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 방문을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나를 돌아보고 역사를 되새기는 힐링 여행, 바로 성지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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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경인일보= 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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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기념비./경인일보= 김종화 기자/

◆3·1운동의 아픈 역사 간직한 화성 제암리 교회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위치한 제암리교회는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이 기독교 주민 23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만행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아픈 사연을 간직한 제암리교회는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교회 내부에는 제암리를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어떻게 진행됐고 이를 빌미로 일본이 얼마나 많은 마을 사람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려주는 전시물들이 있다. 전시물들을 읽어 보다 보면 종교를 떠나 일제시대 민초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느껴 볼 수 있다. 제암리 사건에 대한 증언과 사진 자료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성지순례라는 글을 준비하며 순국 유적을 떠올린 건 3·1절과 8·15 광복절은 수개월 전이지만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후세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그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순국열사들의 애국심을 되뇌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전시관 왼편으로 놓여 있는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23인 순국 묘지 앞에서 묵념하면서부터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했다.

때가 돼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아닌, 자녀와 함께 또는 연인끼리 방문해 역사라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추천해 보고 싶었다. 꼭 제암리 사건을 배우기 위해서 방문하는 게 아닌 청명한 하늘과 가을을 즐기기 위해 호젓한 곳을 방문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쯤 들러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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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미리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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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는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힐링을 위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경인일보= 김종화 기자/

◆화성 남양성모성지와 안성 미리내성지

한반도에 천주교가 소개된 건 임진왜란 전후라는 학설이 대세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한 이수광이 M.리치의 천주실의, 중우론 등을 그의 저서인 지봉유설에 소개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알려 있는 허균도 베이징에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십이단을 가져왔다. 천주교의 도입은 실학에도 영향을 줬다. 실학자 이익과 그의 문인인 안정복 등은 천주교를 학문으로 깊이 연구했고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 형제도 천주교와 인연이 깊다.

건국 초기부터 숭유억불책을 써온 조선에서는 학문적인 접근이 이뤄진 천주학은 금기시됐고 많은 탄압을 받았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이름 없이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또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성모마리아 순례성지다.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 남양성모성지는 입구부터 나무들이 가득해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 5분여 걸어 남양성모성지 안으로 들어서면 아이를 안고 있는 다정함과 편안함,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한 성모상이 반겨준다. 남양성모성지를 걷다 보면 마더 테레사 수녀상, 비오 신부상 등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인들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미리내성지는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지역의 신도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곳이다. 미리내라는 이름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마치 깊은 밤하늘 은하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리내 성지에는 184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25살의 어린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시궁한과 쌍령산 사이에 위치한 미리내성지는 지금이야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지만, 이 도로가 없었다면 오지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두 성지 모두 책 한 권 들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해 보고 싶다. 성지 내를 산책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호젓한 시간을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조용한 성지를 산책하며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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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손골성지. 청명한 파란 하늘과 성당의 모습이 평온함을 준다./경인일보= 김종화 기자/

◆용인 손골성지와 은이성지

수도권에는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성지순례지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갑골성지다. 행정구역상 용인에 위치한 갑골성지는 광교산 자락에 있기에 수원과 성남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손골성지도 미리내성지처럼 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던 교유촌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머물던 프랑스 선교사 도리 헨리코 신부와 오매트로 벤드로 신부가 1866년 3월에 순교를 하게 된다. 손골성지는 두 분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은이성지는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음 세례를 받고 사목 활동을 하던 곳이다. 은이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들어서면 김대건 신부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은이성지에서 마을을 지나 산쪽으로 올라가면 캠핑장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쳐 조금 더 걸으면 삼덕고개가 나온다. 이 길은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사목 활동을 다니던 길로 순교 후에는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해 미리내 성지로 옮겨갈 때 이용했던 길로 알려져 있다.

성지를 방문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서늘한 가을을 즐기기 위한 여행, 나를 돌아보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행으로 마음에 남았다.

경인일보= 김종화·강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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