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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외국인 인구가 늘어난다니- 김태희(다산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 2018-09-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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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외국 사람이 많이 보인다. 관광객도 많지만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도 많다. 요양병원에 가보면 조선족 간병인이 눈에 띄고, 작은 도시에 가보면 중앙아시아 출신인 듯한 노동자를 마주친다. 농촌에 가면 한국어가 서툰 며느리를 만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에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약 147만9000명이었고 매년 증가 추세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 베트남인, 태국인 순이었는데, 이른바 ‘조선족’이라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이 3분의 1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일자리 부족을 엉뚱하게 외국인 탓으로 돌리며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관계도 논리도 잘 맞지 않고 맹목적이다.

우리는 스스로 단일 혈통과 단일 언어의 단일민족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과 같이 다민족국가 또는 다인종국가가 사회적·정치적으로 갖가지 충돌을 겪는 걸 보면 우리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단일민족일까?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것은 통일신라와 고려라는 오랜 통일왕조를 거친 후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고 나서였다. 몽골 침략 이전에는 고려왕조가 약해지자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각기 신라, 백제, 또는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표방했다.

그러나 몽골의 침략을 당하여 40년(1231~1270)의 치열한 대몽항쟁을 치르면서 ‘삼국 분립의식’은 사라지게 된다. 대신 ‘삼국 일통의식’으로 바뀌었다. 그 의식은 이른바 단군과 기자로 구성되었다. 단군 시조는 우리의 고유성을 상징하고 기자는 보편성 내지 문명을 상징하여, 주체성과 세계성을 적절하게 결합한 것이었다. 요컨대 단군을 시조로 하는 반만년 역사라는 의식은 약 700년 전에 생긴 것이다.

언어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 언어엔 북방계 언어와 남방계 언어가 섞여 있다고 한다. 먼 옛날 북방에서 이동했던 우리의 조상은 모래바람을 견뎌내느라 눈이 작았을 것이다. 바다를 통해 남방에서 이동해 왔던 우리의 조상은 상대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리라. 그 후로도 중국 대륙과 북방에서 간헐적으로 크고 작은 무리들이 한반도로 이주해서 먼저 와 살고 있던 사람들과 섞였을 것이다. 순수 혈통이란 있을 수 없다.

언어를 비롯한 문화적 동질성은 공동체 요소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가령 조선시대 노비에게 민족이니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몽골의 침략에 고통받고 일본의 침략에 고통받으면서, 역사적으로 공동체의 운명을 구성원이 함께했기에 민족이니 국가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리라.

외국인 혐오에서 옛날 신분 차별이나 식민지 시대의 차별, 오늘날 을의 갑질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말투가 다르다고 혐오할 수 없고, 다른 공동체라 하여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약 100년 전 3·1독립선언서에서도 우리의 독립을 모든 인류의 공존동생권(共存同生權)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취업하는 경우가 늘어나듯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일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머지않아 외국인 200만명, 300만명 시대가 닥칠 것이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인구절벽에 접어든 이때에, 오히려 외국인의 필요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귀화인과 체류 외국인, 이들은 국적이 달랐거나 달라도 모두 우리 공동체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란 의미다. 국적에 따른 법의 보호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줘야 할 권리나 경제주체로서 향유해야 할 권리는 부정될 수 없다. 서로 의지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공동체와 그 구성원을 위해서.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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