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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KAI, 호조공간은 있다- 정오복(사천본부장·부국장)

기사입력 : 2018-09-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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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고슴도치 딜레마’를 되새겨 본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서로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 멀리 떨어졌다가, 추위에 또다시 가까이 모인다. 고슴도치는 추위와 아픔을 동반한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이 공간을 ‘호조공간’이라고 일컫는다.

한 달여 전부터 사천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품공장 고성군 신축문제로 어수선하다.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자부하는 사천으로선 항공산업 집중화에 역행하는 부품공장 역외 신축을 용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 2012년 산청 A320 날개부품공장에 이어 2015년 진주 우주탐사 R&D센터 무산사태 등을 겪었던 시 입장에선 거듭되는 배신에 모멸감마저 들 정도다. 아무리 이익을 좇는 기업이라 하지만 ‘존중과 신뢰로 상생’을 약속해놓고 번번이 뒤집는 데다 재발 방지도 담보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천시는 내성이 생긴 덕분인지 6년 전이나 2년 전에 비해 대응태도를 사뭇 달리하고 있다. 2015년 9월 김재경 국회의원의 쪽지예산으로 촉발된 우주탐사 R&D센터 진주시 추진 건으로 시와 KAI는 돌이키기 어려울 지경까지 간 적 있었다. 이후 이 사업 자체가 무산되고, 부시장·국장 등이 사과성 기자회견으로 봉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가 불쾌한 심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는 비록 실리를 잃더라도 명분을 앞세워야 할 때가 있는 만큼 한 번쯤 정치적 시위를 해봄직한데 자치행정 기관장으로서 입장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KAI도 심각한 경영권 간섭이라며 본사 이전을 운운했던 2년 전과는 달리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갈등을 최소화시키려 애쓰고 있다. 출구전략 없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입에 발린 ‘상생’ 대신 ‘호조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이 와중에 소위 전문가들은 사천시와 KAI 간 소통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두 기관 간 협의체가 이미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고, 공기업인 KAI의 선택이 단순히 기업 논리만을 앞세운 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알 텐데…. 그들의 공허한 주장에서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사회는 역동적인 대립자의 균형으로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불화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사회 갈등을 역사 과정의 핵심이라 파악했다. 사회는 불완전한 갈등의 지혜로운 관리로 발전한다.

정오복 (사천본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