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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교양 교육’이란?- 김흥년(시인)

기사입력 : 2018-09-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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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양’이라 부르는 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양이란 한자어의 뜻이, 우리가 그 말을 일상에서 쓸 때와 교양 교육이 이뤄지는 곳에서 쓸 때, 크게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선 ‘교양’의 뜻을 찾아보니, 사전은 첫째 ‘문화에 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 둘째 ‘전문적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라 풀이하고 있다. 한자어 ‘교양’은 최소한 일반 상식화된 지식뿐만 아니라 광범한 지식까지 필요한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어떤 사람을 ‘교양 있어 보인다’거나 ‘교양이 없다’고 할 때와 같은 뜻이다. 그런데 ‘교양’에 해당하는 영어와 한자어의 뜻은 많이 다르다.

영어로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가 우리가 말하는 ‘교양’이다. ‘리버럴’은 ‘자유로운’을, ‘아츠’는 ‘개성적 기술’을 뜻한다. 하버드대학교는 2007년 학부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낸 보고서에서 ‘하버드 교육의 목적은 리버럴 교육을 실시하는 데 있다’고 선언한다. ‘리버럴 교육’이라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교양 교육’이다.

하버드 보고서가 밝힌 ‘리버럴 교육’의 특성과 목표는 이렇다. ‘리버럴 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 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집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리버럴 교육’은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다. 여기서 길러주려는 ‘자유로움’은 이미 알고 있는 일반 상식조차 한 차례씩 의심해 볼 것을 요구한다. 그런 뒤 자신의 방식으로 재수용하라고 다그친다. 수동식 주입 교육이 아닌 능동적 수용 능력 교육이다. 말하자면 ‘리버럴’은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더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알고 있는 지식을 꺼내 잡동사니 청소하듯 먼지 털고 다시 닦아 넣든지 버리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와 미국의 ‘교양 교육’의 출발을 다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츠’가 ‘개성적인 기술’이 되는 까닭도 바로 그런 ‘자유로움’ 덕분이다. 우리가 ‘기술’이라 쓰는 말이 영어에는 ‘테크닉(technic)’과 ‘아트(art)’가 있다. ‘테크닉’과 ‘아트’는 둘 다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테크닉’은 누구나 똑같은 기술인 반면, ‘아트’는 사람마다 달리 개성적으로 체득한 ‘기술’을 말한다.

우리와 미국의 교양 교육의 차이는 마치 ‘테크니션(기술자)’과 ‘아티스트 (예술가)’를 위한 교육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엔 우리의 ‘교양 교육’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교양 과목’과 ‘인문학’을 혼동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인문학’은 영어로 ‘휴매니티(Humanities)’이다. 그런데 우리 인근 대학교에선 ‘인문대학’을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대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인문대학’은 ‘휴매니티(Humanities)대학’이고, ‘교양 대학’이 ‘리버럴 아츠’대학이다.

‘교양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포함된다. 이를테면 ‘교양’은 이미 문과 이과 융합적 성격을 지닌다. 교육 현장에서 용어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올바른 교육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잘못된 ‘교양 교육’에는 출발부터 되짚어 보는 통렬한 반성이 요구된다.

김흥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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