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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 말, 말- 곽향련(시인)

기사입력 : 2018-1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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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속엣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을 깜빡 잊고 속엣말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달리는 말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디 속엣말을 터놓아서만이 말(言)이 천리를 달리겠는가. 흥미로운 남의 흠집 내기는 얼마나 잘 부풀려지고 잘 달리는가. 남의 이야기라고 해서 함부로 내뱉는 말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등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라인 서비스에서의 댓글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데서 오는 실언(失言)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가장 어려운 일 세 가지가 첫째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타인에게서 받은 피해를 잊어버리는 것이요, 셋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고 했다. 이 세 가지 다 어려운 일이나 그중에서 남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밀착해 있는 말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이다. 비밀은 새롭고 놀라운 일이므로 옮기고 싶어진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사람이 진정한 침묵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비밀을 털어놓거나 속사정을 털어놓는 당사자는 조금이라도 마음 홀가분해질까 하여 털어놓을 텐데, 들은 사람은 무슨 빅뉴스인 양 남에게 옮긴다. 하여, 말 때문에 진정으로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현대인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진심을 알아주는 벗이 없어 외롭고, 외로워도 말 없이 웃는 게 사람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으니 말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볼이 홀쭉하고 몸이 마른 탓으로 까도녀(까칠한 도시의 여자) 또는 차도녀(차갑고 도도한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나이가 들고 살다 보니 서로 말을 주고받아야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대화를 하고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부터 나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막상 말문이 터이니 수도꼭지에 봇물 터지듯 말이 쏟아진다. 친근감으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정이 오고 가는 가운데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거친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곧 후회를 하지만 이미 한번 쏟아 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후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말을 많이 하고 나면 가슴이 허해지는 반면, 책을 읽으면 말하지 않아도 말을 다 한 듯 사유(思惟)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책과 대화를 하니 불필요한 말이 없어지는 셈이다. 말을 많이 하고도 실언(失言)을 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퇴근길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고 마음으로 일기를 쓰는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쓸데없는 말로 누구에게 못할 말 또는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말을 많이 하고부터 제대로 된 말은 얼마나 했을까? 스스로 반문해 본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다. 내 마음이 날카롭거나 심술궂으면 말 또한 날카로운 칼날 같은 말이 나오고, 해서 안 되는 말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결국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다.

곽향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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