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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싱가포르(1)

밤빛 내려앉아 더욱 빛나는 도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가면 수영하며 보는 야경 환상적

기사입력 : 2018-11-29 07:00:00


장소는 싱가포르, 때는 늦은 밤. 한때 전 세계 3대 클럽(술과 음악이 있어 춤을 추며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 따위의 클럽)이 스페인 이비자의 파샤, 런던의 파브릭 그리고 싱가포르의 쥬크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전 세계 클럽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는 그랬다. 그러나 이번 싱가포르 이야기는 쥬크라는 클럽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언제나 그 나라의 혹은 그 도시의 클럽에 가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 도시의 ‘클럽 문화’야말로 적절히 그곳의 민낯을 순수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클럽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또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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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아름다운 야경.

다시 돌아가서 장소는 싱가포르, 때는 늦은 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가장 정신없이 즐겁게 즐겼던 클럽 쥬크가 아니라 마리나베이샌즈 꼭대기에 있는 쿠데타라고 하는 루프탑 바(Bar)이다. 클럽은 아니지만 적당한 비율로 처음 본 남자들과 처음 본 여자들이 술을 한잔씩 하면서 싱가포르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신혼부부인지 모를 연인들의 로맨틱한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로맨스가 존재하는 곳은 또한 로맨스를 만들고 싶은 무리들이 있는 것이 인지상정. 사람들이 북적이지는 않지만 적당한 인파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또한 사람들의 남자 무리들과 여자 무리들 간의 눈치게임이 진행됨을 바라보면 혼자 여행하던 나로서는 심심할 틈은 별로 없는 장소였다.

말했듯이,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혼자 여행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약간 방관자 혹은 3인칭 작가 시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상황. 누가 봐도 한국 여성처럼 보이는(어떤 특별한 외형이 아니라 오랜 여행 경험에서 축적된 느낌이랄까) 두 명의 여성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편한 자리, 여러 명의 남자가 건네는 술, 그리고 남자는 셋에 한국 국적이 아닌 것 같은 여자 둘과 한국여자 둘, 섞여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앉은 자리 배치 등 그 모든 게 불편해 보였다. 느낌이 좋지는 않아서였는지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다. 그러는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정확하게는 외국 여자 두 명과 엉켜 앉아 있던 그 남자의 친구 두 명과 달리 그 한국 여자들과 담소를 혼자 나누던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Hello bro, Where are you from? (안녕 , 넌 어디서 왔니?)”

위화감. 갑자기 분위기 조이너스, 아까 묘사했던 자리만큼 불편한 얼굴과 그 얼굴에 가득 찬 탐욕, 모든 것이 나를 경계하게 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내 입에서는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Hi, I am From London.(런던에서 왔어)”

본능적인 대답이었다. 한국인이라 말하는 게 부끄러울 리도 없고 평소에 익숙하게 하던 대답 ‘I am from South Korea.’라는 말이 아니라 입 밖으로 런던에서 왔다는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나서는 당시에 지금보다 유창했던 영국식 영어에 확신이 들었는지 이내 그는 내가 런던에서 온 사람이라 믿었고 그 다음에는 생각보다 진부한, 인류 보편적인 놀이 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요청이 들어왔다.

“(영어로 말했지만 이하 한국말로 쓰기로 한다.) 저기 여자 두 명이 한국에서 온 여자들인데 보는 것처럼 내 친구들은 이미 외국인 여자들 짝이 있고 나는 혼자라서 짝이 맞지가 않거든, 실례가 아니라면 너 나랑 같이 짝을 맞춰서 놀래? 너 혼자 온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오늘 그냥 이렇게 집에 갈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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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베이샌즈 스카이파크.

그리고 나는 합석했고, 모르는 남자 1과 모르는 한국여자 1, 2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와 함께 자리하게 됐다. 첫 시작이 그랬던 탓에 계속해서 아시아계 영국인 연기를 했고 적당히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지어냈는데, 내 스스로도 약간 이국적인 외향 탓에 그 자리 어색했던 사람들은 굳이 나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다. 곧 한국 여자 1, 2가 귓속말을 하더니 잠깐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모르는 그 외국(홍콩남자라는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남자는 여자들이 그대로 떠나 버릴까봐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약간의 고압적인 태도에 나도 여자들도 놀랐지만, 특별히 거슬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여전히 방관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자리를 뜨고 나름 그간 젠틀하게 대화를 끌어가던 그가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 지금부터 이 여자들 술에 약을 탈거야. 그럼 아마 이 친구들을 꼬실 수 있을 거고, 우리 친구들 숙소에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내자, 오케이? 나 무슨 말 하는지 알지?”

표하지 않았지만 싱가포르라는 아름다운 나라의 밤공기보다도 나를 둘러싸던 공포감, 처음에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말을 걸었을 때 느껴진 탐욕스러움이 극한으로 발산되는 순간이었다. 쿠데타라는 빨간 네온사인의 불빛이 경고등처럼 보였고,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할까 하는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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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수영장.

물론 티 나지 않게 같이 탐욕스러운 얼굴로 응수하고, 기지를 발휘했다라고 하기에는 연기에 재능이 있지도 않고 경험해보았던 상황은 아니라 어쩌면 첫 느낌 때부터 시작된 경계와 함께 일어난 보호본능으로 그를 응대하기 시작했다. 두 여자 분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앉았고, 누구도 눈치 못 채는 내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딱히 상관없어서 방관자로 그 자리에 냉소적이며 건성으로 앉아 있던 내게는 생존게임의 마지막 문제 풀이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분위기마저 돌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아마, 저 친구는 한국말 못 알아들을 겁니다.”

이전까지 영어로 남자와 대화하던 내가 한국말을 한다는 사실에 두 여자 1, 2는 잠깐 놀라는 눈치였다. 허나 그보다도 내게는 한국말 한마디로 확인할 것이 있었기에 그 말을 시작으로 기다렸다. 혹여나 그가 내말을 알아들을까 그의 반응을 봤다. 모르는 반응이었다. 알았으면 뭐라고 한마디 했겠지. 물론 그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내 첫마디를 알아들었을 경우의 플랜B도 속으로는 존재했다. 그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후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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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야경.

“제 말 잘 들어요, 표정변화도 보이지 말구요. 그냥 웃어요. 저 외국인 친구랑 오늘 같이 놀 생각이세요? 제 생각에는 더 멋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여러분들이라면?”

“아뇨…. 저희도 불편해요….”

이어 내가 말했다.

“저도 오늘 피곤하고 좀 불편하기도 하고요. 그냥 제 말 믿고 저 친구가 주는 술은 이제부터는 안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실수로 쏟아버리거나 아주 좋은 변명으로 거절해봅시다. 체크아웃이 언제입니까?”

“내일 아침 일찍이요.”

살짝 겁을 먹은 것 같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이 남자가 당신들이 마실 술에 약을 탈 거랍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몰려올 여자들의 공포감이 그녀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대한 ‘이 자리에서 같이 자리를 뜨자’는 작전을 유도하는 이야기로 몇 마디를 더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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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