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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인사철 다가오는데- 이종훈(정치부 부장)

기사입력 : 2018-12-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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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공직자들의 인사철이 다가오면 기자가 힘이 있는 줄 알고 청탁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가 이런 청탁일 것이다. 그런데 청탁이 들어오는 대상자는 대부분 인사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 이는 기자의 힘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가 인사 대상에 들어갈 수 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공직사회의 인사 시스템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게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고부터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다행스럽다.

별로 힘도 없는 기자에게까지 청탁이 들어오는데 인사 담당 부서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인사책임자인 자치단체장에게는 얼마나 많은 청탁이 들어갈지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자치단체장들은 미리 엄포를 놓는다. 인사청탁이 발각될 때는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해놓는다. 인사담당자들은 휴대폰을 아예 꺼놓기까지 한다.

인사청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판 ‘매관매직’ 악습이 있었지만 공정한 인사를 한 관료들의 사례도 많이 남아 있다.

가장 공정하게 인사를 한 관료로는 이후백이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이후백은 관직 하나를 제수할 때면 매번 벼슬에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폭넓게 물었으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수했을 경우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랏일을 그르쳤구나’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1578년 6월 1일자 선조수정실록에는 이후백의 일화가 적혀 있다. 이후백이 이조판서 시절, 하루는 친척이 찾아와서 벼슬을 부탁했다. 이후백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작은 책자 하나를 보여줬는데 그것은 앞으로 관직에 제수할 사람들 명단이었다. 친척의 이름도 그 속에 기록돼 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 기록한 것은 장차 천거하기 위함이었소. 그런데 지금 족친께서 벼슬을 구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청탁한 이가 벼슬을 얻게 된다면 이는 공정한 도리가 아닐 것이요. 참으로 애석하구려.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었을 것인데” 했다. 그 친척은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고 한다.

최근에는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인사 청탁과 추천을 놓고 논란거리가 많이 발생한다. 이들은 말썽이 생기면 청탁이 아니라 추천을 했다고 변명한다. 추천과 청탁의 사전적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추천은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천거하는 것을 말하며 청탁은 지연, 학연, 혈연을 통해 사적으로 부탁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추천과 청탁의 경계가 모호하다. 법적으로도 이들을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한 인사청탁을 가지고 업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돼 부정청탁을 막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12일 월간전략회의에서 ‘인사청탁은 반드시 불이익, 능력과 실력 위주 인사, 적소적재 인사’ 등 ‘인사 3원칙’을 강조했다. 문제는 어떻게 실천하는가이다. 인사청탁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불이익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공직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줘야 하고 과정도 공정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경남’을 내세우는 김경수 도정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첫 인사를 얼마나 공정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한다.

이 종 훈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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