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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모래시계- 주강홍(한국예총 진주지회장)

기사입력 : 2018-12-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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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많은 달이다. 휴대폰의 일정표를 들여다본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의무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들이 빠듯하게 눈을 뜨고 있다. 반가워 가고 싶은 데와 어쩔 수 없이 피하기 힘든 곳을 나누어 본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떠올리고 부드러운 기운이 넘치게 만드는 친구의 입담을 듣는 동창회부터,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제는 어느 누가 몸이 아프다고 하더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짠한 모임까지 걸음의 방향을 정한다.

옆에 앉은 사람의 기분은 헤아리지도 않고 계속 혼자 큰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모임은 견디기가 참 힘들다. 술병의 개수가 늘어나고 몸과 마음이 느슨해질 때에는 뜻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부스스 일어나는 후회스런 모임은 더 그렇다. 그런 사람일수록 참석률도 높아 회비가 헤프게 쓰이기도 하고 결산을 까다롭게 조목조목 따지며 권리를 주장하기 일쑤다. 모두가 애써 모른 척하고 넘어가지만 오래도록 저밀 때가 있다.

누구에게 가시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용기를 내서 부딪쳐 제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을 조화롭게 넘기는 지혜가 인내를 벗어날 때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언젠가 모임에서 예사로이 이야기를 나누다 한 친구의 아픈 데를 무의식적으로 건드린 적이 있다. 돌아와서 돌이켜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 나서 본인보다 내가 더 아팠다. 밤새 두통을 앓다가 날이 새자마자 안부를 묻고 정중히 사과를 하였다. 전혀 의식이 없었다고 오히려 나를 다독이던 친구를 또 만나는 달이다.

흰머리가 유난히 많고 격정의 세월을 달군 친구다. 세상의 거친 벽을 많이 타고 넘어온 친구다. 서로의 가슴에 늘 담아두고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반갑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로 달라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고향 언덕을 가지고 있고,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안고 가려는 열정이 닮았기 때문이다. 가지런한 친구의 잔가시를 좀 뽑고, 이번엔 내가 좀 다독여 주어야겠다. 세상이 환한 날이다.

주강홍 (한국예총 진주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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