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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세밑 마무리- 박종국(진영중앙초 교감)

기사입력 : 2018-1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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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나섰다가 산중 조그만 암자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심스레 암자에 들르면 스님이 나서서 반갑게 맞아준다. 마주한 스님의 얼굴이 참 맑다. 이어 차를 내온다. 팍팍한 산행에 피곤했던 일행은 차를 받자마자 벌컥 마셔버린다. 그런데 노스님의 찻잔은 찻물이 채 반도 안 담겼다. 우리는 철철 넘치도록 부어 마시고도 두어 잔을 더 마셨다. 스님은 갈증을 해갈한 우리를 넌지시 바라보며, 차는 가득 부어 마시는 게 아니라 빈 잔의 여유를 갖고 마셔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한 해 동안의 일들 되짚어보니 정말이지 여유 없이 살았다. 먼저 헤아려야 하는 일에 쉽사리 다퉜고, 괜한 데 언성을 높였다. 그뿐이랴. 차를 몰며 끼어들기를 만나면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냅다 빵빵 댔다. 급히 갈 길도 아니었으면서 괜스레 마음만 빠듯했다.

3분의 여유를 가지면 모든 일에 느긋해진다. 아무리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이라도 여유를 갖고 시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 못한다. 그런데도 요즘은 본의 아니게도 재차 서두르게 만든다. 전국에 걸쳐 쭉쭉 뻗은 도로가 그 주범이다. 이제 어디를 가든 일정 이상의 속도를 요구한다. 도로 사정이 좋다는 게 그만큼 속도광을 부추긴다.

먹을거리 하나도 속도전에 돌입한 세태다. 수많은 즉석식품 매장을 보면 가히 ‘빨리빨리’를 지향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설렁탕 한 그릇을 느긋하게 먹는 사람이 드물다. 그냥 밥 말아서 훌훌 넘겨버린다. 우리네 식성은 자장면 한 그릇 먹는 데 불과 3분이 안 걸린다. 똑같은 면 종류지만 파스타나 스파게티를 먹을 때는 얼마나 여유를 부리며 돌돌 말아 먹는가?

이제 달력 한 장 남겨두었다. 세밑 마무리에 충실할 때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마무리는 여유를 가지고, 그 속에서 얽히고설켰던 일들을 하나하나 챙겨보아야 한다. 더러 좀 엉성한 구멍이 보여도 좋다. 무엇 하나도 내 삶의 흔적이 아닌가? 그러나 뭣보다도 지난 한 해 건강하게 보냈다. 크게 만족한다.

박종국 (진영중앙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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