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촉석루] 자연은 놀이터이고 스승이다- 김경(창녕군의원)

기사입력 : 2018-12-18 07:00:00
메인이미지


반세기 전 나의 출생지인 창녕 고암면 일대는 전기가 들어오지 못한 오지였다. 소(牛)를 이용한 인력으로 농사를 지었고, 초등학교는 있었지만 학원은 없었다. 밤이 되면 호롱불 기름을 아끼라는 할머니의 꾸지람에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자연인이었다. 당연히 공부하라는 말은 들은 적도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있어 게임이나 인터넷 등 SNS로 불특정 다수와 채팅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매체와 정보를 공유하는 등 가상공간에서의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기름과 연탄 구하기가 어려웠고 상수도도 없었다.

전기도 없는 시골은 두 명 이상이 모이면 놀이가 가능했고, 인원수에 따라 놀이의 종류도 다양했다.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다망구, 오징어육지, 땅따먹기, 구슬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굴렁쇠놀이, 칼싸움, 전쟁놀이 등 지금은 사라져 갔지만 그 시절엔 또래가 함께하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가게도 없었고, 간식과 용돈이 무엇인지 몰랐다. 산이나 들판, 개천에서 주는 자연의 달콤한 선물과 먹을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봄이 되면 삘기, 찔레순, 참꽃잎, 뱀딸기, 줄딸기, 여름이면 밀싸리, 콩싸리, 뽕(오디)열매, 토평천의 참붕어, 메기, 가물치, 갈겨니, 피라미 등을 잡아 팔기도 하고, 매운탕을 만들어 소주도 한 잔 마셔 보았다.

가을이면 깻묵, 산도라지, 머루, 다래를 배가 부르게 따먹었다. 겨울이면 칡뿌리를 캐어 먹고, 이웃동네 닭서리도 하고, 계곡의 얼음을 깨 산개구리를 통째로 왕소금에 씹어 먹으며 함께 배고픔을 잊고 살았고, 서로를 의지하면 배고픈 농촌 개구쟁이들의 식문화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감기도 잊고 살고 있다.

나의 유년 시절은 모두 자연에서 구하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법을 동네 형님들과 누나들에게 배우고, 후배에게 전해주었다.

무한경쟁시대에 자아 실현의 그 무엇도 없이 그냥 부모의 경직된 교육 인식과 사회 분위기로 인해 소중한 학창 시절이 흘러간다. 눈앞의 그 무엇에 가려 되돌릴 수 없는 성장기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김 경 (창녕군의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